허리까지 바닷물이 차올라 몸이 휘청거렸지만 구명조끼를 벗어주는 그의 모습에선 어떤 머뭇거림도 없었다. 손전등과 재난안전통신망 단말기를 양손에 든 그는 쉴 새 없이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양손을 어깨 위로 들어올리는 모습도 보였는데 상황 대처 요령을 알려주는 듯했다. 고립자 구조 매뉴얼에 따른 행동이었을 것이다.
인천해양경찰서 영흥파출소 소속 이재석(34) 경장은 지난 11일 오전 2시가 넘은 시각 옹진군 영흥면 꽃섬 인근 갯벌에 고립자가 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 구조 대상자를 만나 구명조끼를 벗어준 후 실종된 이 경장은 몇 시간 후 꽃섬에서 1.4㎞ 떨어진 해상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으나 끝내 숨졌다. 그의 구명조끼를 건네받은 갯벌 고립자는 해경 헬기에 의해 구조됐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때도 구명조끼를 벗어준 이가 있었다. 안산 단원고 2학년이었던 정차웅(당시 17세)군은 구명조끼가 없는 친구에게 입고 있던 조끼를 벗어줬다. 정군과 함께 선박 로비에서 기둥을 붙잡고 있었던 생존 학생 등을 통해 정군의 행동이 확인됐고, 2016년 의사자로 지정됐다. 다만 당시 희생자 상당수는 구명조끼를 입은 상태였는데 “구명조끼를 입고 선실에서 대기하라”는 방송 때문이었다. 선박 내부가 침수되면 구명조끼의 부력으로 잠수가 불가능해지고 행동에 제약을 받게 되는데 잘못된 지시로 희생자가 늘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비행기 탑승 시 구명조끼는 반드시 탈출 직전에 부풀려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처럼 세월호에서도 탈출 직전 착용하도록 안내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경장의 사망이 더 안타까운 이유는 ‘2인 출동’이라는 매뉴얼을 지키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매뉴얼을 지켜도 사고를 피하기 어려운데 매뉴얼조차 지키지 않는다면 위험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현장으로 출동한 이 경장은 고립자를 구하는 과정에서 매뉴얼을 충실히 지켰지만 그를 보호해야 했던 2인 출동 매뉴얼은 지켜지지 않았고 그는 돌아오지 못했다.
정승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