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11일 열린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부동산 시장의 투기 수요를 통제하겠다”고 말했다. 부동산 투기를 막겠다는 강한 시그널을 시장에 보낸 것으로 해석된다. 이 대통령이 재차 투기의 문제점을 언급한 만큼 향후 부동산 정책에도 이 같은 기조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규제 지역 확대, 세금 및 대출 규제 등 수요 억제 카드가 추가될 것으로 전망한다.
국민일보는 이날 부동산 전문가 5인에게 정책의 향방을 물었다. 전문가들에게서는 “수요 조절을 위한 정책이 추가되는 게 불가피할 것”이라는 공통된 의견이 나왔다. ‘2030년까지 수도권 135만 가구 착공’을 골자로 한 9·7 공급 대책 이상의 정책이 필요하다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착공에서 실제 입주까지 시차가 발생하는 만큼 체감할 만한 공급 대책이 추가돼야 한다는 의미다. 질문에 응한 전문가는 고준석 연세대 상남경영원 교수,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 우병탁 신한은행 프리미어 패스파인더 전문위원,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장(가나다순)이었다.
수요 억제책으로는 어떤 카드가 가능할까. 전문가들은 투기과열지구에서의 실거주 요건 및 대출 규제 강화, 취득세·양도세·보유세 등의 과세정책 변화를 꼽았다. 특히 서울 마포·성동구 등 한강벨트가 9·7 대책의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권 확대’ 적용 지역으로 언급됐다. 박 수석전문위원은 “토허구역 추가 지정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마포, 성동뿐 아니라 강동, 광진, 영등포, 양천 등도 모두 물망에 올라 있다”고 했다.
부동산으로 유입되는 자금을 줄이는 방안도 언급됐다. 함 랩장은 “규제지역 추가, 대출 규제 확대, 수요 과밀 지역에 대한 세금 인상 등 수요 억제책을 쓸 수밖에 없을 듯하다”고 말했다. 금리 인하 기조, 평년보다 적은 내년 수도권 입주량, 많은 시간이 필요한 지역 균형발전 등의 상황을 고려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세금 규제 카드도 어김없이 거론됐다. 직접 과세 확대는 아니어도 에두르는 방식이 사용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 박 교수는 “규제 지역 확대 카드가 1번으로 나오고, 효과가 없으면 세금 규제책을 가져올 것”이라며 “공정시장가액비율을 80%로 정상화해 종합부동산세를 높이고, 서울의 취득세 중과 기준을 조정·비조정 지역 관계 없이 2주택으로 강화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했다. 함 랩장은 “조정대상지역의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 제도를 일몰하거나 상생임대주택 특례 일몰, 공시가격 인상 등으로 직접 법을 바꾸지 않고도 세금을 높이는 방안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세금 규제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고 교수는 “양도세를 높이면 매물이 잠기고, 실수요자가 거래할 땐 그 양도세가 매매가에 반영되면서 가격이 또 오를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발표된 공급 대책이 수요 억제 대책과 조화를 이루려면 정책 진행 상황을 지속해서 국민에게 공유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우 위원은 “공급 대책이 용두사미로 그치지 않으려면 진행 과정에 대한 꾸준한 공유와 소통이 중요해 보인다”며 “국토교통부 등 관계 부처에 부동산 정책 관련 소통 담당관이 있어도 좋을 듯하다”고 말했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