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에도 ‘경험 소비’는 멈추지 않는다. 이제 여행은 가격 경쟁이 아니라 스토리·전문성·큐레이션으로 승부하는 ‘콘텐츠 트립 시대’로 접어들었다. 천체 사진가와 떠나는 수천만원대 오로라 여행이 상품으로 나오니 빠르게 자리가 찼다. 세계적인 탐험가와 함께 떠나는 북극 탐사 상품도 가격이 억대에 달하지만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특별한 체험을 찾는 수요가 커지면서 여행사뿐 아니라 백화점까지 프리미엄 여행 시장 공략에 나섰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신세계백화점이 지난달 론칭한 ‘비아신세계’의 상품 반응이 초반부터 뜨겁다. 이달 출발하는 첫 상품인 ‘권오철 천체 사진가와 떠나는 아이슬란드 오로라 여행’은 3400만원대임에도 매진됐다. 디즈니 크루즈 여행과 남미여행도 인기다. 비아신세계는 백화점 업계 최초로 자체 기획·운영하는 프리미엄 여행 플랫폼으로 북극 탐사·모터스포츠 VIP 관람·정희원 전 아산병원 교수와 함께하는 웰니스 체험 등 기존에 보기 어려웠던 프로그램을 큐레이션했다.
백화점업계는 콘텐츠를 차별화한 여행상품으로 VIP 이용객을 적극 공략하는 모습이다. 현대백화점은 VIP 전용 온라인몰 ‘RSVP’를 통해 전문가 동행 테마여행을 선보이고 있다. 서양미술 전문가 전원경 교수와 함께하는 도쿄 미술 기행은 완판됐다. 여행작가 노미경과의 남미 일주·철학박사 김필영과 함께하는 튀르키예-그리스 철학 여행도 이달 공개할 예정이다. 롯데백화점은 올해부터 직접 상품을 기획해 VIP 전용 여행 상품을 판매한다. 지난 5월 에비뉴엘 최상위 등급을 대상으로 울릉도 럭셔리 리조트 ‘빌라 쏘메’ 패키지를, 다음 달엔 일본 ‘무와 니세코’ 리조트 패키지를 진행한다.
여행사들도 고급 노선을 한층 강화하고 있다. 모두투어는 지난 3월 ‘하이클래스’를 론칭해 스위스 파노라마 기차·알래스카 빙하 크루즈·해리포터 영국 투어 등 희소성 있는 상품을 내놨다. 모두투어 관계자는 “특색 있는 경험 제공에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취향과 관심사를 깊이 파고드는 테마여행도 강세다. NOL 인터파크투어는 K클래식을 대표하는 조성진·임윤찬의 무대를 유럽 현지에서 관람하고 빈·잘츠부르크 등 클래식 본고장을 탐방하는 ‘피아노 홀릭’ 패키지 상품을 출시했다. 모두투어도 메이저 리그 야구 경기를 직관하는 테마 상품을 선보이고 있다. 전문성과 기획력을 바탕으로 대체 불가능한 경험을 제공하는 ‘SIT’(Special Interest Travel)가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거론되고 있다.
국내 주요 여행사들은 이색 테마를 반영한 중·고가 패키지 판매 비중이 전체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추산한다. 단가가 높은 프리미엄 상품이 소비자들을 이끌면서 여행사 수익성도 개선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여행 경험이 많아지면서 ‘정말 특별한 경험을 하고 싶다’는 수요가 커지고 있다”며 “고객 충성도를 높이고 재구매를 유도하기 위해 콘텐츠에 집중한 새로운 기획들이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신주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