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기영 “문학은 잊힌 것 드러내야”… 옌롄커 “무한한 진실을 쓴다”

입력 2025-09-12 01:08
중국과 한국을 대표하는 옌롄커(왼쪽 두 번째)와 현기영(왼쪽 세 번째) 작가가 11일 서울 중구 프레이저 플레이스 남대문에서 열린 ‘2025 서울국제작가축제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질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과 중국을 대표하는 작가 현기영과 옌롄커가 한자리에 앉았다. 서울국제작가축제 개막을 하루 앞둔 11일 서울 중구 프레이저 플레이스 남대문 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다.

옌롄커는 해마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작가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사서’ 등의 작품을 통해 중국 사회를 날카롭게 비판해왔다. 대다수 작품이 중국 내 ‘금서’로 지정됐다. 축제 첫날인 12일 ‘순이 삼촌’ 등을 통해 제주 4·3사건을 조망해온 현기영 작가와 대담을 가질 예정이다.

올해 축제의 주제 ‘보 이 는 것 보 다 ( )’는 단순히 ‘보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너머’의 보이지 않는 진실을 드러내는 것이 문학의 본질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이 같은 주제에 대해 현기영은 “사물이나 인간은 보이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오히려 겉으로 보이는 것은 극히 일부일 수 있다”며 “‘내면이 무엇인가’를 추구하는 게 문학”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한국이나 중국 모두 압축 성장 과정에서 고통도 있고 열광도 있었지만 인간성이 마모되고 비인간화되면서 물질만 좇는 상황이 됐다. 그 과정에서 5·18이나 제주 4·3 사건 등 과거의 역사가 보이지 않는 것이 됐다”면서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옌롄커는 “진실은 보이는 것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도 있다. 진실하지 않은 진실도, 진실을 초월한 진실도 있다”면서 “작가의 경험은 유한하지만 문학은 그 유한한 경험을 통해 무한한 진실을 써내려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두 작가의 작품은 현대사의 얼룩진 폭력과 비극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문학 속 폭력성에 대해 현기영은 “국가는 인간에 내재한 폭력성을 제어하고 조절하기는커녕 오히려 부추겨 왔다”면서 “문학은 그런 국가를 견제하고, 비판하며 항의하고, 감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문학은 한편에서는 인간의 야수성을 어루만지기 위해 다감한 언어로 달래고 위무하며 폭력성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옌롄커도 “문학에서 폭력을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지만 동시에 사랑과 위안, 평화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동감했다.

옌롄커는 자유로운 비판이 가능한 한국의 문학 창작 현실에 부러움을 표했다. 그는 “현 작가를 만나면 5·18에 대해 물어보고 싶었다. 어떤 민족이든 암흑시기를 거치며 상처를 받는데 한국 작가들은 상처를 직접 대면할 수 있는 것 같아 부러웠다”며 “중국에서는 상처를 대면하기 어렵다. 어떻게 직면할 수 있는지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특히 한국 문학에 대해 “특유의 자유로운 분위기가 좋다. 개인이나 약자들에 관심을 갖고 있다”면서 “중국 문학은 약간 구속을 받는다. 중국에서 작품을 창작하려면 많은 노력과 희생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동아시아에서 한국 문학이 중국과 일본보다 앞서가고 잘하고 있다. 한국 영화가 아시아 최고라고 알고 있는데 문학에서도 (아시아를) 이끌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올해 작가축제는 17일까지 서울 종로구 복합문화공간 그라운드서울에서 열린다. 옌롄커를 비롯해 8개국 10명의 외국 작가와 현기영을 포함 19명의 한국 작가가 참여한다.

맹경환 선임기자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