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컬처의 인기가 ‘콘텐츠 트립’이라는 새로운 글로벌 여행 트렌드로 확산하고 있다. 외국인 팬덤이 자신이 열광한 콘텐츠의 배경과 무대를 직접 찾아가는 ‘성지순례형 관광’에 나서면서다. 서울에는 이른바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 열풍이 불고 있다. 글로벌 MZ세대가 한국을 찾아 대중목욕탕에서 세신(때밀이) 체험을 즐기고, 북촌과 남산타워 등에서 인증샷을 남긴다. K콘텐츠의 성공이 항공편 예약부터 체험 프로그램, 유통업계 협업까지 전방위로 파급력을 발휘하는 모습이다.
11일 글로벌 여행 플랫폼 트립닷컴에 따르면 지난 6월 20일부터 지난달 31일까지 약 2개월간 유럽발 한국행 항공편 예약은 전년 동기 대비 79% 늘었다. 스페인발 예약은 146% 급증하며 국가별 증가율 1위를 기록했다. 독일(122%)과 이탈리아(107%)도 배 이상 증가세를 보였다. 캐나다와 호주에서도 각각 50%, 20% 이상 증가하며 ‘케데헌 열풍’은 전 대륙으로 퍼지고 있다. 트립닷컴 관계자는 “콘텐츠가 여행을 견인하는 게 글로벌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며 “25~34세 MZ세대에서 이러한 현상이 특히 두드러진다”고 말했다.
콘텐츠 속 장면은 곧바로 관광 상품으로 이어지고 있다. 케데헌 주인공들이 한복을 입고 공연을 하거나 대중목욕탕을 찾는 모습이 소개되면서 이를 직접 체험하려는 외국인 수요가 크게 늘었다. 인바운드 플랫폼 클룩에 따르면 개봉 이후 사우나 이용권 예약은 최대 57% 증가했다. K팝 아이돌 스타일링 체험은 200%, K팝 댄스 클래스는 40% 늘었다.
온라인 검색 데이터도 같은 흐름을 보여준다. 구글 트렌드 분석에 따르면 케데헌 공개 이후 미국·일본·프랑스 등에서 한국 여행 검색량이 급등했다. 관련 검색어의 절반 이상(52.4%)은 북촌(11.8%), 낙산공원(9.6%), 올림픽주경기장(9.6%) 등 영화 속 실제 배경지였다.
서울관광재단은 이에 맞춰 지난달 말 ‘서울트립헌터스 스탬프 투어’를 시작했다. 남산타워, 북촌한옥마을, 낙산공원, 한강공원, 롯데월드타워 등 영화의 배경지를 코스로 지정하고 인증 사진을 올리면 스탬프를 주는 방식이다. 북촌 일대 전통소품 상점들은 한복·노리개·갓 등의 매출이 늘었다.
애니메이션 주인공 ‘헌트릭스’의 숙소로 추정되는 롯데월드타워도 ‘케데헌 성지’로 부상하고 있다. 서울의 현대적 스카이라인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주목받으며 전망대 ‘서울스카이’를 찾는 외국인도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유통업계도 케데헌 특수를 적극 활용 중이다. 농심, GS25, 파리바게뜨 등은 케데헌 지식재산권(IP)을 활용한 협업 상품을 선보이고 있다. 시장도 이에 반응하는 모습이다. 이날 농심 주가는 전 거래일 대비 19.17% 급등한 48만8000원으로 마감했다. 애니메이션에서 신라면·새우깡과 유사한 식품이 노출되면서 수혜주로 꼽히자 투자 심리까지 자극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김유혁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케데헌은 애니메이션 흥행을 넘어 음식, 패션, 관광 등 한국 문화 전반으로 소비 확산을 이끌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성훈 기자 hunh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