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엔 집안일을 나누는 암묵적인 규칙이 있다. 쓸고 닦는 건 남편이, 요리와 빨래는 내가 한다. 상대보다 더 잘해서가 아니라 더 신경 쓰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책임만 있고 보상은 없기에 곧잘 불만이 나온다. 다른 일로 몸이 지치고 짜증 날 때 더 그렇다. 보통 이런 식이다. 화장실 선반을 닦는 남편이 머리끈이나 화장품 같은 물건을 치우며 “왜 자꾸 늘어나냐”고 타박하거나, 내가 화구 두 개를 쓰며 저녁을 만들다가 “가만히 있지 말고 숟가락이라도 놔라”고 소리친다. 조금만 도와주길 바라는 마음을 먼저 읽으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할 때가 대부분이다.
우리는 하루에 한 번쯤 누군가가 작은 도움이 필요한 순간을 마주한다. 길을 걷다 보면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어르신이 가장 흔한 예일 것이다. 익숙한 동네라면 잠시 멈춰 길을 알려드리겠지만 낯선 지역이거나 바쁜 일정 탓에 못 본 척 지나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가만 생각해보면 내 손에는 무엇이든 검색할 수 있는 스마트폰이 있고, 찾지 못할 장소는 거의 없다. 모른다거나 바쁘다는 건 핑계에 불과했다.
얼마 전 낯선 동네에서 도움을 줄 수 있었던 순간을 머뭇거리다 놓쳤다. 버스 도착 시간을 확인하며 정류장에서 종종거리고 있던 때, 어딘가에서 날아온 축구공 하나가 차도 안으로 굴러 들어갔다. 담벼락 너머에서 넘어온 것이었다. 내 옆을 지나던 한 남성이 자전거를 멈추고 차도로 들어가 공을 주워왔다. 학교로 공을 넘기려 했지만 벽이 높았다. 그냥 그 자리에 두면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는 공을 자전거에 실어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뒤늦게 한 아이가 달려와 감사 인사를 하며 공을 받아갔다. 버스정류장에 서 있던 모두는 그 장면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지난주 국민일보가 주최한 ‘돌봄’을 주제로 한 포럼 역시 여러 사람의 도움 덕분에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수 있었다. 이 행사는 지난 3월부터 이어진 연중 기획 ‘너와 나, 서로 돌봄’의 일환으로, 특히 교계의 지원 속에 성장한 다양한 인물들이 함께해 자리를 빛내줬다. 한국으로 유학 와 신학의 길을 걷고 있는 한 여성 전도사는 또렷한 한국어 발음으로 그날의 성경 말씀을 봉독했다. 참석자들에게 제공된 커피와 쿠키는 중증 정신장애인들이 직접 만들어 정성을 더했다.
국민일보 소속 장애인 예술단 국민엔젤스앙상블의 자폐 청년 5명은 실수 없이 연주를 뽐내 큰 박수를 받았다. 연주 단원들이 무대에 오르기까지 작은 도움이 필요했다. 출근시간과 겹친 데다 비까지 내려 단원들은 자칫 오전 행사에 늦을 뻔했다. 평소보다 서둘러 출발했지만 도로 정체가 심했다. 한 단원의 보호자가 “주차장에서 연주자 먼저 인솔해 줄 수 있겠느냐”고 요청해 왔고, 우리는 기꺼이 도왔다. 행사 직전 음을 조율할 정도로 상황은 긴박했지만 단원들은 흔들림 없이 무대를 마쳤다.
최근 지적장애인을 대상으로 예배를 드리는 한 교회 목사님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는 주일마다 약간의 도움을 실천하면서 그 속에서 느리지만 분명한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고 했다.
“친구들이 찬양을 외우지 못할 거로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조금만 기다려주면 다 외웁니다. 100번 해서 안 되면 300번 반복하면 되죠. 입술로 하나님을 직접 고백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기쁨인지 몰라요.”
우리는 모두 약간의 도움이 필요한 존재다. 누군가의 사소한 손길이 더해져야만 우리의 삶은 비로소 이어지고 깊어진다. 청소나 요리처럼 각자 맡은 역할이 분명한 일상 속에서도 내 몫이 아니니 모른 척하기보다는 상대의 필요에 귀 기울이고 손을 내밀 수 있다면 삶은 훨씬 더 윤택해질 것이다. 약간의 도움은 단순한 친절을 넘어 서로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된다. 오늘 하루, 우리가 마주치는 이에게 ‘도움의 안테나’를 켜보는 건 어떨까. 잠깐의 관심과 배려만으로도 누군가의 하루는 훨씬 편안하고, 어쩌면 행복해질 수 있다.
신은정 미션탐사부 차장 se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