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여야 합의 손바닥 뒤집듯 파기… 이래서 협치 되겠는가

입력 2025-09-12 01:20
11일 국회 본회의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 등에 대한 내란 외환 행위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대안)에 대한 수정안이 국민의힘 의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가결되고 있다. 이병주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3대(내란·김건희·순직해병) 특검법 개정안을 국민의힘과 수정하기로 합의했다가 11일 파기했다. 내용에 대해 당내 강경파 등을 통해 반대 의견이 쏟아져 나오자 합의를 뒤집은 것이다. 대화와 타협을 통한 정치의 정상화를 갈망하는 국민 여론에 찬물을 끼얹은 셈이다. 이재명 대통령과 여야 대표 회동 이후 이뤄진 첫 쟁점사항 합의라는 언론의 호평은 오보가 됐다. 여야 원내대표가 합의해 언론 앞에서 발표한 내용을 단 몇 시간 만에 없던 일로 만드는 상황에서 무슨 협치가 되겠는가.

민주당은 이날 국힘과 3대 특검법 개정안을 수정하기 위한 협상이 최종 결렬됐다면서 이른바 ‘더 센 특검법’을 원안대로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했다. 여야는 전날 3대 특검법 개정안에 대해 수사 기간을 추가로 연장하지 않고 인력 증원도 최소화하기로 합의했으나 당내 반발이 잇따르자 민주당이 이를 파기한 뒤 원안대로 통과시킨 것이다. 당내 강성 지지자들은 합의를 강하게 비난하며 철회를 촉구하는 메시지를 지도부와 의원들에게 보냈고, 국힘과 합의한 원내 지도부에 대한 사퇴 주장도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여당이 정부조직 개편의 핵심 중 하나인 금융감독위 설치 협조를 조건으로 내걸었던 야당과의 합의를 번복하면서 이재명정부의 정부조직법 처리도 미뤄질 가능성이 커졌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정부조직 개편과 내란 진실규명을 바꾸는 것은 맞지 않는다”며 개의치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특검법 협상과 관련해 당내 강경파에 힘을 실어준 것으로 앞으로도 여야 관계는 상당 기간 파행으로 얼룩질 가능성이 커졌다.

민주당의 합의 파기는 정청래 대표가 한동안 제1야당 대표와 악수조차 하지 않았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불과 며칠 전 이 대통령과 여야 대표의 만남은 그저 보여주기 쇼에 불과했던 것인가. 진영이 아닌 국민의 시각에서 국정을 운영하고, 입법에서도 현실감각을 발휘해야 한다는 지적은 여전히 유효하다. 여권은 특정 세력의 요구나 강성 지지자들에 휘둘린 입법에 매달리다간 역풍을 맞게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