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 K컬처와 십자가

입력 2025-09-12 00:32

“동네 건달에게 능욕당하고 길바닥에 쓰러져 힘없이 울고 있는 버림받은 처녀 아이.”

20세기 위대한 사상가 함석헌이 그의 명저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 역사’에서 묘사한 조선의 모습이다. 외세의 침략과 내란으로 수많은 전쟁을 치른 우리 민족은, 그가 글을 쓰던 당시에도 일제의 억압 아래서 비참하게 연명하고 있었다.

오산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던 함석헌은 우리 민족의 자랑거리를 찾으려 했지만 끝내 실패한다. 이집트와 바빌론은 문명의 시작을, 중국은 도덕을, 그리스는 예술을, 로마는 정치를, 영국은 헌법을 내세우는데 한국은 내놓을 만한 것이 없었다. 피라미드나 만리장성 같은 유물도, 세계사에 기여한 발명도, 위대한 인물이나 사상가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마침내 조선이 인류 역사에 남긴 유산을 찾아내니, 그것은 바로 ‘고난’이었다. 수많은 고난의 역사를 겪으며 우리 민족의 가슴에 응어리진 정서가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한(恨)’이었다. 그는 고난과 한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으로 하여금 세상을 구원하게 하신 선물임을 발견했다.

함석헌의 역설적 통찰은 100년 만에 K컬처로 성취됐다. 기생충, 오징어 게임, BTS 등이 있지만 여기서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만 예로 들어보자. 케데헌에 세계가 열광하는 까닭은 단순히 재미와 감동을 주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 속에서 구원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비주류의 삶을 사는 이방인, 사회적 낙인이 찍힌 사람들,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은 사람들, 드러내기 싫은 치부를 가진 사람들, 씻을 수 없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사람들, ‘존재 자체가 실수’라고 느끼는 사람들. 이들이 조용히 눈물 흘리며 위로와 치유를 경험한다. 주류에 속해 주름살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조차 자기 안에 있는 그림자를 마주하고 충격을 받는다.

고난의 역사를 겪으며 형성된 한국인의 집단 무의식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선과 악이 대립하는 세계관, 개인 안에도 선과 악이 동시에 내재한다는 인간관, 불평등한 사회 구조와 개인의 책임 사이에서 죄책감을 느끼는 무력한 개인의 실존적 고뇌, 사랑에서 비롯된 희생과 연대가 악을 물리치는 힘이라는 해결책, 그리고 그것을 해학과 노래와 춤으로 승화시키는 수준 높은 문화 속에 그것이 담겨 있다. 한국인이 발견한 인간과 세계에 대한 통찰은 온 세계에 선물이 됐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보편적인 것이다.

그리고 가장 보편적인 것이 가장 성경적인 것이다. K컬처가 세계인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이유는 십자가의 보편성 때문이다. 예수님은 죄악으로 가득한 세상에 연약한 인간의 몸으로 오셨다. 악한 세상과 직면하시고, 마침내 그 악을 끌어안은 채 죽임을 당하셨다. 그의 몸에는 지금도 흔적, 곧 ‘문양(紋樣)’이 남아 있다.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은 예수님과 함께 악한 세상 속에서 자기를 희생함으로써 자기와 타인을 구원한다.

그렇다면 이제 대한민국의 고난과 한의 역사는 극복된 것일까. 아무도 흔들 수 없는 세계 10대 강국, 5대 군사 대국이 됐으니 말이다. 천만에. 고난은 여전히 넘치고 한은 계속 쌓여간다. 분단의 땅은 전쟁의 불씨를 안고 있다. 12·3 비상계엄 사태는 그동안 쌓여 온 대립의 결과이며, 더 극단적인 대립의 전조다. 언제나 그렇듯 극우파가 난립한다는 것은 살기 어렵다는 뜻이다. 청소년은 학교폭력 앞에서 죽음을 생각하고, 산업 현장과 플랫폼의 노동자는 과로로 스러진다. 그러니 한동안은 K컬처의 소재가 모자랄 것을 염려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다시 함석헌의 말이다. “인류의 가는 길이 본래 고난이라 깨달았을 때, 여태껏 학대받은 계집종으로만 알았던 그가 가시 면류관의 여왕임을 알았다. 그녀의 할 일은 이제부터다.”

장동민 백석대 기독교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