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에는 어른들이 즐기던 노가리 같은 마른안주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퍽퍽하고 밋밋한 그것이 무슨 맛이 있단 말인가 싶었다. 그러나 힘들게 마감을 끝내고 차가운 생맥주와 함께 먹태를 처음 맛본 순간, 나는 비로소 어른의 문턱에 들어선 듯한 기분을 느꼈다. 담백하고 고소한 그 맛은 내 미각의 지도를 조금 바꾸어 놓았다.
내가 종종 들르던 가게에서는 주인이 다듬이 방망이 같은 도구로 먹태를 두드린 뒤 직화로 구워냈다. 불향이 스민 노릇한 속살과 거무스름한 껍질은, 속은 촉촉하고 껍질은 바삭해서 자꾸만 손이 갔다. 지금은 이사했기 때문에 그 가게가 여전히 있는지 알 수 없지만 먹태를 굽던 풍경은 아직 선명하다.
처음 먹태를 접했을 때 나는 소스의 조합에 감탄했다. 간장과 마요네즈, 그리고 잘게 썬 매운 고추의 신박한 조합이라니! 마요네즈의 느끼함이 입안에 맴도는 순간 매운 고추가 날카롭게 스며들어 미각을 환기한다. 미슐랭 가이드가 개인의 취향에도 적용된다면 나는 이 소스의 조합에 주저 없이 별 셋을 줄 것이다.
배는 부른데 입은 심심할 때 먹태의 존재는 빛난다. 나는 특히 껍질 쪽을 더 즐긴다. 처음엔 거무스름한 껍질의 외양 때문에 꺼렸었다. 하지만 지금은 얇고 바삭한 껍질이 주는 식감이 몸통보다 더 좋다. 오징어가 질깃하고 짭짤하다면 먹태는 담백하고 깔끔하다. 말린 안주의 황태자라 불러도 지나치지 않다.
먹태를 먹으며 나는 시를 쓰는 친구들과 ‘어떤 시가 진짜냐’를 두고 치기 어린 논쟁을 벌이곤 했었다. 정작 다음날이면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기억이 흐릿했다. 이런 수다는 어쩌면 기계적으로 먹태를 씹는 동작과 비슷한 것일지도 모른다. 저작 행위는 단순히 생존을 위한 운동이 아니라 원초적인 쾌감을 주기 때문이다. 고된 하루 일과를 마치고 먹는 소박한 먹태 한 접시. 그 작은 보상이 하루를 닫는 의식이 된다.
신미나 시인 겸 웹툰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