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리더, 족장에게서 찾다

입력 2025-09-12 02:46
게티이미지뱅크

책에는 다소 놀라운 연구 결과가 나온다. 배려와 공감 능력이 극히 낮은 ‘사이코패스’가 리더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한 연구에서 미국의 경영자 200명을 대상으로 사이코패스 테스트를 진행했다. 40점 만점에 30점이 넘으면 여지없는 사이코패스 판정을 받을 수 있다. 전체 경영자(리더) 중 30점을 넘는 사람이 8%에 달했다. 소수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일반인 중 사이코패스일 확률에 비해 20배나 높은 수치였다. 리더가 어떻게 선택되고 리더십이 어떤 방식으로 발휘되는지에 대해 의문을 던지는 결과다.

덴마크 인류학 저술가 데니스 뇌마르크는 전작 ‘가짜 노동’에서 성과와 상관없는 보여주기식 가짜 노동을 고발하고 진짜 노동이라는 대안을 모색해 왔다. 가짜 노동에서 벗어나 진짜 노동만을 하기 위해서는 진짜 리더십이 필요하다. 그가 가짜 노동을 양산하는 ‘목표 중심적이고 비인격적이며 무자비한 리더십’의 대안으로 ‘족장형 리더십’을 제안한 이유다. 동료 크리스티안 그뢰스와 함께 쓴 이번 책에 ‘나는 내 상사가 대장이면 좋겠다’는 제목을 달았는데 여기서 ‘대장’은 바로 ‘족장’을 의미한다.

족장형 리더십이란 무엇인가. 저자는 “겸손을 바탕으로 공동체에 헌신하고 스스로 공동체의 질서를 따름으로써 권위를 얻는 리더십”으로 정의한다. 인류는 애초 이런 족장 리더십에 익숙했다. 전 세계 수렵채집사회와 부족사회 50여 곳을 체계적으로 조사한 미국의 진화생물학자 크리스토퍼 보엠은 공통점을 발견한다. 족장이 권력을 남용하지 못하도록 공개적인 비판이나 조롱, 노골적인 불복종을 통해 지속적인 견제가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자연스럽게 족장은 군림하는 리더가 아니라 공동체를 조정하는 역할을 맡게 됐다.


저자는 족장 리더십의 핵심을 나열한다. 겸손, 경청, 관대함, 자기 절제, 통찰력, 인내심, 미래를 내다보는 시야, 그리고 다양한 집단과 그들의 요구를 조율하는 유능한 중재력 등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언제나 자신의 이익보다 공동체의 이익을 앞세워야 한다는 점이다. 저자는 족장형 리더십이 현대 사회에도 여전히 유효하고 미래의 중요한 대안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책에는 조직 구성원 모두의 심리상담사 역할을 기꺼이 맡는 리더, 회사를 돌아다니며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데 시간을 아낌없이 쓰는 리더 등 ‘현대의 족장’들이 소개된다. 또한 ‘나는 리더이기에 타인을 섬기며, 타인을 섬기기 때문에 리더다’라는 말로 요약되는 ‘서번트 리더십’의 흐름도 언급된다. 이들의 사례는 현대 사회에도 족장형 리더십이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책의 미덕은 어떻게 ‘진짜 리더’를 판별할 수 있는지 안내하는 훌륭한 실용서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족장형 리더를 흉내만 내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들에게 속지 않으려면 그들의 포용적 리더십의 언어를 ‘더블 클릭’해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의 판별법 일부를 소개한다. 주변의 리더를 판단하는 훌륭한 잣대가 될 수 있다.

공동체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족장형 리더(A)와 달리 그렇지 않은 리더(B)는 자신의 커리어를 우선시한다. A는 조직의 힘이 다양성과 자율성에서 나온다고 믿지만 B는 예측불가능성을 두려워하고 획일성을 강조한다. A는 관대하고 따뜻한 관심을 보이지만 B는 회의실 끝자리에 앉아 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을 리더십이라고 생각한다. A는 조직의 성과와 공로를 자기 자신에게 돌리지 않는 겸손이 있지만 B는 자신의 지위와 성취만을 강조하고 대중을 가르치려 든다. A는 진심으로 궁금해서 질문하지만 B의 질문 속에는 불신이 깔려 있다.

맹경환 선임기자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