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재국 카타르까지 때린 이스라엘… 트럼프 “매우 기분 나빠”

입력 2025-09-10 18:38
9일(현지시간) 이스라엘군의 공습을 받은 카타르 도하의 주거용 건물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이스라엘군은 하마스 고위급 인사가 체류하는 건물을 정밀타격했다고 밝혔다. AFP연합뉴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고위급 인사를 사살하기 위해 9일(현지시간) 카타르 수도 도하를 전격 공습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휴전 중재국인 카타르가 공격받은 것에 대해 “매우 기분이 나쁘다”며 불쾌감을 나타냈다. 이스라엘이 하마스 제거 의도를 더욱 노골화하면서 인질 석방을 놓고 진행 중이던 휴전 협상이 차질을 빚게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AP통신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은 이날 하마스 정치국원들이 체류 중이던 도하의 주거용 건물을 공습했다. 전투기와 드론이 표적에 폭탄 10발을 투하했다. 이스라엘군은 이번 공습을 ‘불의 꼭대기(Summit of Fire)’ 작전으로 명명했다.

현장에는 하마스 정치국 부의장 칼릴 알하야 등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마스는 알하야 등 주요 인사들은 생존했지만 알하야의 아들과 보안요원 등 5명이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카타르군 장교 1명도 숨졌다. 카타르 외무부는 “이스라엘의 비겁한 공격”이라고 규탄했다. 카타르 당국은 휴전 협상 중재를 잠정 중단하겠다는 뜻을 미국에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가자지구 전쟁이 2년 가까이 이어지는 동안 이스라엘이 카타르에서 군사작전을 벌인 건 이번이 처음이다.

유럽연합(EU)과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는 강한 비판이 나왔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카타르의 주권을 노골적으로 침해한 행위”라고 비난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미국 뉴욕에서 10일 오후 3시 긴급회의를 열기로 했다. 현재 유엔 안보리 의장국은 한국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스라엘이 공습을 사전에 알리지 않았다며 불만을 나타냈다. 트럼프는 백악관 인근 식당에서 “전체적인 상황이 불만족스럽다”며 “매우 기분이 나쁘다는 정도로 말하겠다”고 했다. 로이터통신은 트럼프가 공습 직전 미군으로부터 관련 내용을 보고받았다고 전했다. 트럼프는 트루스소셜에서 “미국의 동맹국인 카타르 내부에 대한 일방적 폭격은 이스라엘이나 미국의 목표를 진전시키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다만 “가자 주민들의 고통에서 이득을 얻는 하마스의 제거는 가치 있는 목표”라며 공격 취지에는 공감한다는 입장도 덧붙였다.

이스라엘과 하마스는 그간 인질 석방 조건을 놓고 대립해 왔다. 현재 약 20명의 인질이 가자지구에 생존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미국 측이 하마스에 제안한 휴전안은 이스라엘이 가자 점령 작전을 종료하면 하마스가 인질을 풀어주고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수감자 2500~3000명을 석방한다는 내용이다. 하마스 고위급 인사들이 휴전안을 검토 중인 상황에서 공습이 이뤄진 것이다.

CNN은 “이스라엘이 인질 귀환보다 하마스의 완전한 섬멸에 더 큰 중요성을 두고 있다는 최신 증거”라며 “(미국이 제시한) 협상안이 공허한 약속임을 시사한다”고 전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