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실에서] 세상을 회복시키는 그리스도의 향기

입력 2025-09-13 03:08
게티이미지뱅크

과거 A국에서 집회를 인도했던 적이 있습니다. A국에 가기 위해 공항에 일찍 도착한 저는 다른 승객들보다 먼저 탑승할 수 있었습니다. 제 자리는 세 사람이 앉는 자리의 가운데였습니다. 앉고 보니 양옆에 어떤 사람들이 탈지 괜히 궁금해졌습니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궁금증은 해결되었습니다. 먼저 저의 오른쪽 옆자리에 한 젊은 남성이 앉았습니다. 그분에게서 은은한 향기가 났습니다. 좋은 향기는 늘 그렇듯 기분을 좋게 합니다. 그래서 ‘아, 이분은 에티켓이 있는 분이구나’ 생각하고 있을 때 저의 왼쪽 자리에도 젊은 남성이 앉았습니다.

그런데 그만 얼굴이 찡그려지고 순간 저도 모르게 코를 틀어막았습니다. 왜냐하면 향수를 뿌리다 못해 들어부었는지 냄새가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독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중간 자리여서 피할 곳이 없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머리가 아프고 속이 뒤집히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기도했습니다. “주님, 집회를 시작하기도 전에 저에게 왜 이런 시련을 주십니까.” 저는 속으로 ‘내게 허락하신 시련을 통해 나의 믿음 더욱 강하게 자라나고~’를 찬양하면서 간신히 비행시간을 견뎠습니다.

역한 냄새, 악취 나는 인생은 세상을 병들고 아프게 하지만 향기 나는 인생은 세상을 회복시키고 건강하게 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생각하며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말씀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향기)가 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고전 2:14) 당시는 예수 믿는 사람들이 환난과 핍박을 당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예수 믿고 사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으며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드러내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어떻습니까. 초대교회 성도들만큼은 아니지만 우리도 그리스도인으로 세상을 살아가며 힘듦과 어려움을 겪을 때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이, 세상의 권세를 잡은 마귀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 정도는 괜찮아’ 하며 협상 카드를 내밀기 때문입니다. 협상 카드는 대부분 ‘나도 한발 물러설 테니, 당신도 한발 물러서라’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세상에서는 협상의 기술이 되기도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마귀의 타협을 받아들이면 우리에게서 나던 그리스도의 향기가 사라지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사라지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악취로 변하게 됩니다. 마귀가 말하는 것은 늘 그럴듯하게 들립니다. 왜냐하면 마귀가 제시하는 타협은 ‘세상과 하나님 사이에서의 균형’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믿음 생활에 타협은 불필요합니다. 주님께서 이미 십자가에서 부활로 승리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의 향기에는 이름이 있는데 바로 ‘승리의 향기’입니다. 사도 바울이 믿음 생활을 ‘승리의 향기가 나는 생활’에 비유해 말하는 이유는 당시 고린도가 처한 위치적 특성 때문이었습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고린도는 로마 군대의 중요한 집결지 중 한 곳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로마 군대의 개선 행렬이 종종 열렸던 곳이기도 합니다. 개선 행렬이 시작될 때 주피터 신전에서 향기를 피워 온 도시 구석구석에 퍼져 나가게 함으로써 승전 소식을 알렸습니다. 이 향기는 일종의 SNS 역할을 해서 온 도시 사람들에게 승전 소식을 알린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이 같은 당시 문화를 배경 삼아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싸우시고 승리하신 소식을 향기가 되어 전하고 있음에 감사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삶은 마귀의 타협을 과감하게 거절하는 삶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통해 고린도 교회 성도를 칭찬하시는 것처럼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가 나는 삶, 예수 승리의 소식을 전하는 향기 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마귀가 뿌리고 다니는 악취로 인해 병들고 죽어가는 영혼에 다가가 그리스도의 향기를 맡게 하고 그로 인해 회복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황선욱 여의도순복음분당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