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예 작가가 실패작이라며 버린 이지러진 도자기. 그 위를 은색 스테인리스 재질이 부드럽게 감싼다. 여기에 뜨개 레이스를 은색으로 캐스팅해 은입사 장식처럼 얹었다. 마치 작가가 “어떤 삶도 귀하지 않은 것은 없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듯하다.
현대미술가 이수미(56·사진) 작가의 개인전 ‘비어 있는 온전함’이 서울 중구 덕수궁길 두손갤러리에서 16일 개막한다. 막바지 설치 작업 중인 작가를 10일 전시장에서 만났다. 뉴욕주립대에서 주얼리 디자인을, 홍익대 대학원에서 조각을 전공한 그는 주얼리와 조각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업을 꾸준히 이어왔다.
이수미는 삼국시대 토기, 고려청자, 조선백자 중 깨져서 가치를 잃은 유물, 동시대 도예가들이 실패작이라며 버린 도자기 등에 은색·금색 재질로 ‘예술적 터치’를 더해 현대미술 작품으로 재탄생시켰다. 하지만 도자기가 품고 있던 원래의 상처와 파손의 흔적을 감추지 않는다. 토기의 기형적인 흘러내림, 백자의 찌그러진 곡면이 그대로 있기에 작가가 봉합하고 덧입히는 행위는 상처 받은 것에 대한 위로의 언어가 된다. 또 해골, 못, 거미, 레이스 등을 부착해 삶과 죽음의 알레고리를 만든다. 그는 “버려졌다고 느껴지는 것들이 관심과 응원 속에서 빛나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며 “그런 메시지를 작품에 담았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특히 깨지거나 흠집 난 도자기를 우레탄으로 캐스팅하고 그걸 실제 도자기처럼 벽면에 가득 부착한 대형 설치 작품 ‘사일런스(침묵)’ ‘기억의 무게’ 등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설치 작품 바닥에는 캐스팅에 쓰인 ‘원본’ 도자기를 병치함으로써 실재와 허상이 교차하는 의미망을 확장한다. 10월21일까지.
글·사진=손영옥 미술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