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후변화 위험 세계 최고… 5년 내 대응 못하면 치명타”

입력 2025-09-12 02:12
홍종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가 지난 9일 국민일보 대회의실에서 인터뷰 질문에 답하고 있다. 그는 “금융사가 기업의 탄소배출량 감축에 투자하는 전환 금융에 적극적으로 나서려면 정부의 지원 사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한국이 맞닥뜨린 기후 변화 위험은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5년 안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금융권은 물론 경제 전반이 치명적인 충격을 받게 될 겁니다.”

오는 25일 열리는 2025 국민금융포럼에서 기조연설을 맡은 홍종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9일 인터뷰에서 “기후 변화에 대한 정부의 대응이 미진하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코넬대에서 환경에너지경제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그는 30년 이상 환경, 특히 기후 변화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고 가르쳐왔다. 환경경제학계에서 국내 최고의 석학으로 꼽힌다.

만난 사람=권기석 경제부장

홍 교수는 올해 초 한반도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대규모 산불부터 지난여름 폭염·폭우 사태, 최근 강릉 지역의 극심한 가뭄까지 기후 변화의 물리적 위험이 실물 경제를 넘어 금융 위험으로까지 옮아갈 수 있다며 정부의 대응을 촉구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현재 한국이 직면한 가장 큰 기후 변화의 위험은 무엇인가.

“기후 변화 위험은 크게 전환 위험과 물리적 위험으로 나뉜다. 전환 위험은 2015 파리 협정(Paris Agreement)에 따른 탄소 배출량 감축 과정에서 비롯되는 것을 말한다. 물리적 위험은 폭염·폭우·태풍·가뭄 등 기후 재난이 일어남에 따라 발생하는 사회·경제적인 피해다. 철강업·시멘트업 등 고탄소 제조업 비중이 큰 한국은 그동안 전환 위험이 큰 나라로 여겨졌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새 물리적 위험에 따른 피해가 급증했다.”

-최근 한국에 폭염 등의 피해가 커진 것은 무엇 때문인가.

“전환 위험을 줄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탄소 감축에 실패했다는 소리다. 다만 이것은 한국뿐 아니라 세계의 문제다. (2015 파리 협정 등에서) 세계 각국이 탄소 배출량을 줄이자고 머리를 맞댈 당시 선진국은 개발도상국에 기술·금융 지원을 약속했지만 지키지 않았다. 이를 본 인도와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개도국은 높은 석탄 발전 비중을 줄일 생각을 안 한다. ‘너희(선진국)가 과거에 탄소를 많이 배출해 기후 변화를 초래해놓고 왜 우리(개도국)만 괴롭히냐’는 태도다. 전환 위험과 물리적 위험은 동전의 양면이다. 당장 와닿는 것은 물리적 위험이지만 전환 위험 대응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탄소 배출량을 줄여야 한다.”

-기후 변화 위험이 금융에는 어떤 악영향을 미치나.

“금융권이 투자나 대출 등으로 돈을 내준 기업이 기후 변화로 피해를 보는 경우를 생각하면 쉽다. 2022년 제11호 태풍 ‘힌남노’가 경북 포항을 덮쳤을 때 포스코 제철소에 하천수가 흘러 들어가면서 가동이 전면 중단됐다. 포항제철소가 문을 연 지 54년 만에 처음 벌어진 일이었다. 제철소 가동은 이듬해 2월이 돼서야 안정됐는데 이 기간 포스코와 협력사는 2조2000억원이 넘는 피해를 봤다. ‘좌초 자산’(시장 환경 변화로 경제적 가치를 잃게 되는 자산) 문제도 있다. 석탄 등 화석 연료를 이용하는 발전소는 기대 수명이 끝나기 전에 가동이 중단될 것으로 보이는데 여기에 투자하거나 돈을 빌려준 한국산업은행(산은) 등 금융사도 피해를 볼 것이다.”

-산은 말고도 화석 연료 발전소에 투자한 금융사가 많다. 그들이 전환 위험을 간과했다고 보나.

“아니다. 정부 실책이다. 2023년 세계은행(WB)이 한 편의 보고서(‘Detox Development: Repurposing Environmentally Harmful Subsidies’)를 냈다. ‘인류의 생존에 필수적인 환경이 과도한 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으니 해독(detox)하자’는 내용이다. 이때 WB 연구원들이 이 보고서를 들고 가장 먼저 찾은 나라가 한국이다. 한국 정부가 기후 변화를 부채질하는 화석 연료 산업에 과도한 보조금을 뿌리고 있다고 본 것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세계 가스 가격이 급등했을 때 정부가 전기료 인상을 통제하면서 한국전력공사가 40조원이 넘는 적자를 보지 않았나. 물론 소비자 물가 때문에 전기료 급등을 막을 수밖에 없었던 상황은 이해하지만 이 정도로 강하게 통제한 것은 사실상 정부 재정으로 한전의 적자를 책임지겠다고 공표한 셈이다. 금융권은 이런 상황을 지켜보고 ‘석탄 화력 발전 계속할 수 있겠는데?’ 싶었을 것이다.”

-금융권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전환 금융이라는 게 있다. 철강업 등 고탄소 산업을 꾸려나가는 기업이 탄소 배출량을 점진적으로 줄여나갈 수 있도록 투자나 대출해주는 개념이다. 포스코는 탄소 배출량이 많은 기업이지만 전환 금융 차원에서는 돈을 얼마든지 빌려줄 수 있는 것이다. 다만 금융권이 이를 자의적으로 할 수는 없다. 각 금융사가 전환 금융에 적극적으로 나서도록 하려면 정부의 지원 사격이 필요하다. 전환 금융을 위한 기준이나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줘야 한다.”

-기후 변화 대응에 정부 역할이 큰 것 같다.

“한국은행이 ‘정부가 기후 변화에 대응하지 않으면 2100년까지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이 21% 줄어든다’는 보고서를 지난해 말 냈는데 위험이 과소 평가됐다고 본다. 미국 노스웨스턴대 연구에 따르면 세계 GDP가 50% 감소할 수 있다. 기후 변화로 전쟁이 일어난다고 보는 것이다. 각 기업이 탄소 배출량을 절반으로 줄여야 하는 과학 기반 목표 이니셔티브(SBTi) 원년이 2030년이다. 각 기업이 원재료 조달부터 상품 공급까지 가치 사슬 전반에서 간접적으로 배출하는 탄소량까지 측정해 평가하는 ‘스코프(scope) 3’ 규제도 같은 해 미국과 유럽연합(EU)에서 시행된다. 정부가 지금처럼 손을 놓고 있다가는 한국 기업이 미국과 EU에 수출을 못 하는 때가 온다. 골든타임은 5년 남았다.”

정리=김진욱 기자 real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