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제바스티안 바흐(1685~1750)는 10세에 부모를 모두 잃고 고아가 됐다. 형의 집에서 자라며 오르간과 하프시코드를 배웠던 그는 훗날 ‘음악의 아버지’로 불리는 위대한 음악가가 됐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1770~1827) 역시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로 인해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자랐지만 불굴의 의지로 인류 최고의 교향곡들을 남겼다.
“이 이야기를 들려줄 때마다 아이들의 눈빛이 달라져요. ‘바흐도 고아였는데 나도 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요.”
클래식 대중화를 꿈꾸는 비영리법인 공연단체 ‘뭉클’(뭉쳐야 클래식) 대표 송하영(49) 피아니스트가 자립준비청년(보호종료아동)들에게 자주 들려주는 이야기다. 그는 2020년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 예술가들과 연대해 뭉클을 창립한 뒤 자립준비청년들과 특별한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자양분이 된 타지 생활
선화예고 재학 중 러시아로 유학을 떠난 그는 차이콥스키 국립음악원을 졸업한 후 오스트리아 빈, 캐나다 토론토 등을 거쳐 말레이시아 푸트라대 객원교수를 역임했다.
지난 8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빌딩에서 만난 송 대표는 “언어와 문화가 다른 해외에서 17년간 보내며 소속감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며 “누군가에게 속해 있다는 느낌, 함께한다는 따뜻함이 얼마나 소중한지 절실히 깨달았다”고 말했다.
2004년 귀국 독주회를 가진 후 그는 대학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며 한국 클래식계의 현실을 목격했다. 음대 졸업생들도 경제적 여건 때문에 연주자로서 삶을 이어가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클래식 공연 대부분이 무료로 개방해야 겨우 객석을 메울 수 있고, 많은 무대가 재능 기부를 강요하다시피 해요. 예술가들에게 예술은 돈을 버는 직업이 아니라 돈을 내야만 유지할 수 있는 직함일 뿐이었죠.”
팬데믹이 만든 기회
2020년 코로나 팬데믹으로 모든 공연장이 문 닫았을 때 송 대표는 위기를 기회로 바꾸기로 했다. 팬데믹이 사그라들기만을 기다리는 소극적 자세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뜻을 같이하는 예술인과 연대를 도모했고 뭉클이 그렇게 탄생했다.
2020년 7월 첫 공연을 올린 뭉클은 당시 사회적 거리두기 상황을 고려해 실시간 라이브 스트리밍을 송출하며 문화예술 소외계층과 소통했다. 공연 영상 링크는 ㈔들꽃청소년세상, 미혼모 보호시설, 노숙인 쉼터 등에 기부됐다.
송 대표는 2022년부터 보육원 출신 자립준비청년들을 지원하는 들꽃청소년세상의 홍보대사를 맡았다. 본격적인 자립준비청년 멘토링을 시작하며 매월 공연에 청년들을 초청해 클래식 음악가들의 삶과 음악을 소개하고 격려했다.
음악을 통해 꿈꾸다
송 대표는 “음악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달래주는 힘이 있다”며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을 들으면 역경을 이겨내는 의지를 느낄 수 있고, 쇼팽의 ‘야상곡’을 들으면 마음이 평온해진다”고 설명했다.
자립준비청년들은 뭉클을 통해 위대한 음악가들의 삶 속에서 희망을 배우고 자신만의 꿈을 키워가고 있다. 음악에 흥미를 느낀 이들 중에는 피아노 학원에 다니며 음악을 공부하기도 했고 실제로 실용음악을 전공하는 공연예술학교에 진학한 친구도 있다.
특히 박수민(가명·23)씨의 변화는 놀라웠다. 그는 친모를 알지 못한 채 입양됐다가 다시 파양당해 들꽃청소년세상에 오게 된 사연을 가진 청년이었다. 평탄하지 않은 삶을 살아온 탓에 스스로 자신만의 경계선을 그어놓고 살았다.
“수민이는 처음엔 자기 한계를 미리 정해놓고 도전하지 않으려 했어요. 하지만 음악을 통해 그 벽을 많이 허물었던 것 같아요. 결국 명문대 공학과에 당당히 합격했어요. 정말 자랑스러운 변화죠.”
송 대표는 수민씨 사례를 통해 음악이 단순한 위로를 넘어 자신감과 도전 의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걸 확인했다.
2022년 들꽃청소년세상에는 가슴 아픈 일이 있었다. 자립을 위해 고군분투하던 20대 초반의 자립준비청년이 에어컨 설치 등 닥치는 대로 노동일을 감당하다 과로사한 것이다. 뭉클은 두번 다시 이런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추모 공연을 올렸다. 서편제의 ‘살다보면 살아진다’를 중심으로 소리꾼 배소영과 함께한 이 공연은 자립준비청년들에게 큰 위로가 됐다.
송 대표는 추모 공연을 통해 자립준비청년들을 위한 활동을 더욱 확대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현재 전국에 2만5000명의 자립준비청년이 있지만 이들이 받을 수 있는 문화예술 지원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송 대표의 뭉클을 통해 더 많은 이들이 용기를 얻고 꿈을 꾸길 기대하며 공연 재개를 준비하고 있다. 송 대표의 말이다.
“뭉클의 역할은 클래식의 문턱을 낮추는 일입니다. 자립준비청년 등을 비롯, 많은 이들이 음악을 통해 각자의 삶을 스스로 위로하고 치유하는 경험을 했으면 합니다.”
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