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교지만, 이런 전도 방식이라면 대환영입니다.”
남매 듀오 ‘악뮤’의 이찬혁이 지난 8월 초 KBS ‘열린음악회’에서 부른 ‘멸종위기사랑’ 무대 영상에 달린 댓글이다. 인류애를 잃어가는 시대에 사랑의 소망을 담은 이번 노래엔 기독교적 메시지가 비교적 분명히 담겨 있지만 종교를 떠나 많은 이들이 열광하고 있다. 오히려 그가 전하는 메시지가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한다’거나 ‘자기가 하고픈 이야기를 당당히 표현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며 그의 기독교 신앙에 대해서도 긍정적 궁금증을 표하는 반응도 잇따른다.
“신앙 언어 장벽 넘은 대중과의 소통”
대중 무대에서 음악적 완성도를 높이면서 복음의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전하는 흐름은 점차 확산되고 있다. 이찬혁은 그 대표 주자다. 그가 ‘멸종위기사랑’을 선보인 무대에서 부른 또 다른 노래 ‘비비드 라라 러브(Vivid lala love)’도 뜨거운 반응을 낳았다. 코러스를 강조하고 뮤지컬 댄서 등이 함께한 그 무대는 흥겨운 블랙 가스펠 스타일이었다. 곡 중간중간엔 “God mercy on this ground(주의 자비가 이 땅에 임하길)” 등 신앙 고백 같은 가사가 등장하는데도 달리 어색한 느낌 없이 자연스럽다.
그의 과감한 고백이 신앙 언어를 넘어 대중에게 닿는 건 오랜 기간 대중 가요계에서 대중과 소통해 온 과정과 명실상부한 음악적 실력이 겸비됐기 때문이다. 문화선교연구원의 김유민 연구원은 최근 국민일보와 인터뷰에서 “선교사의 자녀로 자랐지만 대중성에 있어 이찬혁은 프로”라면서 “그가 예술성을 담아 풀어낸 언어는 기독교 언어에 갇혀있지 않기에 ‘교회적 언어’를 넘어선다”고 분석했다. 그렇기에 대중은 그의 무대를 거북하게 여기지 않고 그가 전달하는 이야기를 각자의 방식대로 받아들였다는 설명이다. 김 연구원은 “전문적으로 대중과 소통하는 프로 아티스트가 자신만의 언어로 퍼포먼스를 꾸린 시점에서 신앙 언어가 가진 배타성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며 “대중은 무리 없이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음악으로 건넨 서사에 대한 각자의 해석들을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게 됐다”고 부연했다.
복음 메시지 전달… 공연보다 부흥회
지난해 11월 ‘제45회 청룡영화상 시상식’ 축하 공연은 이찬혁이 자신의 정체성을 전면에 드러낸 무대이자 공연 자체로도 레전드급으로 꼽히는 무대였다. 그는 당시 노래 ‘장례희망’에서 “난 천국에 있기 때문에” “할렐루야 꿈의 왕국에 입성한 아들을 위해” “함께 일어나 춤을 추고 뛰며 찬양해” “큰 목소리로 기뻐 손뼉 치며 외치세”라고 표현했고, ‘파노라마’에선 “이렇게 죽을 순 없어. 버킷리스트 다 해봐야 해. 짧은 인생 쥐뿔도 없는 게 스쳐 가네 파노라마처럼”라고 외쳤다. 공연은 스스로 관으로 들어가는 퍼포먼스로 마무리됐다. 이는 많은 이들을 ‘죽음이란 또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는 관문인가’하는 신앙적 성찰로 이끌었다.
지난 7월 초 KBS ‘불후의 명곡’ 왕중왕전에서 가수 소향, 양동근, 기타리스트 자이로가 힙합과 성가를 한데 묶어 선보인 무대도 기독교적 메시지를 강하게 던진 무대로 꼽힌다. 이들의 무대는 미국의 유명 힙합곡인 ‘갱스터스 파라다이스(Gangsta’s Paradise)’로 시작해 모차르트의 레퀴엠 중 ‘라크리모사(Lacrimosa)’로 이어졌다.
양동근은 성경 이사야 53장 5절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를 랩으로 읊으며 예수의 고난과 인류 구속을 직접 표현했다. 소향은 놀라운 가창력으로 “그날은 눈물로 가득하리라…”는 가사를 전하며 회개의 마음과 하나님의 자비를 노래했다. 헤리티지 콘서트 콰이어 50명이 함께한 합창은 장엄한 예배 분위기를 더했다.
이들의 무대 영상엔 15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무대 완성도에 감탄하는 반응이 압도적인 가운데 “성경 말씀을 대놓고 말하는 대중 공연을 한 그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경연 무대가 아닌 부흥회처럼 느껴졌다” “대중 무대에서 이렇게 종교의 의미를 전달하는 도전을 시도하는 게 대단하다”는 평가도 적지 않았다.
팬덤 존중 문화… ‘SBNR세대’에 주효
삶과 죽음, 회개와 구원 등 깊은 신앙적 메시지를 담은 대중음악이 기독교인뿐 아니라 대중들에게도 편안히 받아들여진다는 건 신앙과 예술의 경계가 허물어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안찬용 서울장신대 실용음악과 교수는 “아티스트들이 자신만의 기독교적 세계관을 이 시대의 언어를 사용해 대중에 불편하지 않은 방식으로 표현하기 시작하면서 기독교와 일반 문화를 가르던 과거의 장벽이 상당히 낮춰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가요계 팬덤은 아티스트가 믿는 종교를 존중하는 문화로 발전돼 그들이 자신의 소신을 세상에 전할 수 있도록 돕는다”고 설명했다.
CCM칼럼니스트인 추연중 추미디어앤아트 대표도 “교회에서 음악을 시작한 아티스트가 대중음악 영역에서도 성공하면서 신앙 고백을 음악을 통해 표현하는 현상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며 “대중들에게 친숙한 문화적 코드와 방식을 통해 자연스럽게 복음을 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라고 평가했다.
‘종교에 얽매이지 않는 영적인(SBNR·Spiritual But Not Religious)’ 삶을 추구하는 요즘 세대에게 특히 이러한 접근은 유용하다는 분석도 있다. 영적인 것에 관심이 많은 세대이기에 대중음악 속 신앙 메시지가 기독교 세계관을 자연스레 접하고 기독교에 대한 질문과 대화를 시작할 수 있는 좋은 매개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강중현 백석예술대 교회실용음악과 교수는 “기독교 메시지를 담은 대중음악은 인간의 근원적 철학적 질문과 현실에 대한 답인 성경과 예수 그리스도를 중간 매체 없이 직접 만나고 반응할 수 있다는 점에서 SBNR세대에게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경계해야 할 점도 분명하다. 안 교수는 “아티스트의 삶이 신앙과 다른 모습을 보이거나 자칫 상업성만이 강조될 때 신앙의 본질이 흐려지고 오히려 공격의 빌미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기독교 메시지와 퍼포먼스가 단지 인기와 이슈, 흥행만을 목적으로 하면 본래 전하려던 복음의 메시지는 당연히 희석되고 단순한 공연 연출과 흥행 아이디어로만 소비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추 대표도 “아티스트는 음악적인 완성도에 몰두한 나머지 복음적인 메시지를 가볍게 다루거나 변질시키지는 않았는지, 장르나 가사 등 음악적 표현에 있어서 크리스천으로서 분별력 있는 태도를 보였는지 점검이 필요하다”며 “크로스오버라는 문화 수용에 있어서 교회 내 보수적 시선과 편견의 벽이 여전히 존재하기에 우리 안에서도 유연하면서도 중심적인 본질을 잃지 않는 비판적 수용이 더해진 올바른 시선이 갖췄는지에 대한 냉철한 자문이 필요하다”고 했다.
강 교수는 “기독교 문화로서 음악을 하는 크리스천 아티스트든지, 대중문화 안에서 크리스천 정체성을 가지고 활동하는 아티스트든지 세상에 가치 기준에 복음의 진리로 맞설 수 있어야 한다”며 “이는 곧 평화 공존 상생을 넘어 사람의 근원적 존재 목적인 ‘하나님의 찬송을 불러’(사 43:21) 영원한 나라의 소망을 되찾게 하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신은정 기자 se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