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우량 고객 금리 올려 저신용자 이자 깎아주라는 대통령

입력 2025-09-11 01:10
이재명 대통령이 9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제41회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김지훈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저신용 서민 대출 금리가 연 15%대에 이르는 것을 두고 “잔인하다”며 제도 개선을 주문했다. 빚을 성실히 갚는 사람들까지 빚 탕감 해주겠다는 발언에 이어 대출 금리에 직접 개입하는 메시지를 내놓은 것이다. 포용금융을 강조하는 문제 제기 차원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그러나 금리 정책이 시장 원리에 따라 움직이기보다 대통령 말 한마디에 좌우되는 상황이 반복된다면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저신용 차주 지원은 2004년 카드 사태 이후 사회안전망 확보 차원에서 꼭 필요한 제도였다. 금융 당국이 외환위기 이후 최저 신용자 특례보증과 햇살론, 불법사금융예방대출 등 정책 지원 상품을 개발해 지원하고 있는 이유다. 다만 그 방식은 금리를 억지로 인하하기보다는 재정 보조, 보증 확대, 채무조정 프로그램 등 제도적 뒷받침을 통해 풀어야 한다.

그런데 이 대통령은 초우량 고객에게는 초저금리로 돈을 많이 빌려주는데, 0.1%만이라도 부담을 더 지워 어려운 사람들에게 좀 더 싸게 빌려주라는 식으로 억지로 대출 금리를 건드리라는 주문을 한다. 이 발상은 금융시장의 기본 원칙을 거스른다. 금융시장은 위험에 따른 가격 결정이 핵심인데, 이를 무시한 채 ‘착한 금리’만 강조한다면 시장 질서를 왜곡하고 건전성도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을 향해 금리 인하를 요구하며 해임 압박을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그때마다 글로벌 금융시장은 크게 요동쳤고, 미국 경제의 신뢰도마저 흔들렸다. 은행들이 쉬운 이자 장사로 배를 불려온 것도 사실이고, 포용금융을 더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 역시 옳다. 그러나 대통령 한마디가 규제로 연결되면 금융 불안을 키우는 위험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정치적 구호식 압박보다는 제도 설계와 재정 지원으로 풀어가는 것이 책임 있는 정부의 자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