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의 시기에 가장 큰 위험은 격동 자체가 아니라 어제의 논리로 행동하는 것이다.” 미래학자 피터 드러커의 이 말이 요즘처럼 절실하게 다가온 적이 있을까. 어제는 과거의 경험이나 매뉴얼에 의존해 재난에 대응했다면 이제는 기후 위기와 인공지능(AI)이라는 큰 변화의 물결 속에서 재난에 대응하는 방식도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할 때다.
올해 언론에서는 ‘전례 없는’ ‘예측을 뛰어넘는’ 같은 표현이 유난히 자주 등장했다. 지난 7월 충남 서산에는 하루에 438.9㎜, 9월 전북 군산에는 한 시간에 152.2㎜의 역대급 극한호우가 쏟아졌다. 하천이 범람하고 도시가 물바다가 됐다. 3월 경북·경남 지역에선 평년보다 고온건조한 날씨에 강풍까지 불면서 시속 8.2㎞의 무서운 속도로 번지는 초대형 산불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 산불로 31명의 소중한 생명을 잃었고, 10만㏊의 숲이 사라졌다.
기후변화로 재난 예측은 점점 어려워지고, 피해 규모 또한 커지고 있다. 이제 과거 방식만으로는 대응에 한계가 있다. 세계 각국은 지진·지진해일, 홍수, 산불 같은 극한 재난에 AI를 접목해 새로운 해법을 찾아내고 있다. 일례로 미국 캘리포니아 산림소방국은 AI 산불 감시 시스템을 운영해 산불이 어디서 시작될지, 어떻게 번질지를 예측해 대응하고 있다. 실제로 새벽 3시에 시작된 산불을 AI가 일찍 발견한 덕분에 45분 만에 진화할 수 있었다고 한다.
우리도 행정안전부를 중심으로 지능형 예측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AI가 CCTV 영상을 실시간 분석해 하천 수위나 군중 밀집을 스스로 감지하고, 위성·드론·사물인터넷(IoT) 센서로 모은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해 재난을 사전에 예측하는 식이다. 이렇게 축적된 공공 데이터는 연구기관과 기업에 개방돼 더 혁신적인 기술로 발전한다. 세계적 흐름에 ‘뒤처지지 않는’ 수준이 아니라 세계가 주목하는 ‘AI 기반, K재난안전 생태계’로 도약하는 것이다.
오는 17일부터 사흘간 경기도 고양 킨텍스에서 열리는 ‘2025 대한민국 안전산업 박람회’는 이러한 첨단 기술을 한자리에서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원전 지하 해수 배관을 자율 점검하는 4족 보행 로봇, 매몰된 틈새로 들어가 생존자를 찾아내는 뱀 모양 인명탐지 로봇 등 우리나라의 혁신 기술이 장차 어떻게 국민 안전을 지킬지 직접 경험하고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이번 박람회에는 100여명의 해외 구매자와 투자사도 참석한다. K컬처와 K방산이 세계의 신뢰를 얻고 주목받듯 ‘K재난안전 기술’도 머지않아 전 세계가 벤치마킹하는 표준이 될 것이다.
안전에는 국경이 없다. 대한민국의 기술이 우리 국민의 삶을 지키는 것은 물론 전 세계 곳곳에서 소중한 생명을 구하는 데 쓰이길 기대한다. 앞으로 펼쳐질 AI 시대, 이번 박람회가 첨단 기술로 재난 대응 방식을 근본적으로 혁신하는 그 출발점이 될 것이다.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