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 없이 찾아오는 월경은 여성들에게 큰 불편이다. 생리대를 미리 준비하고 부족하면 주문해야 하는 것 자체가 번거로울 수밖에 없는데, 월경 주기마저 불규칙하다면 그 부담은 커진다. 이런 불편을 눈여겨본 곳이 있다. 펨테크(Femtech) 스타트업 ‘해피문데이’다. 펨테크는 여성(female)과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로, 생리·임신·출산·육아에 AI·빅데이터를 활용해 삶의 질을 높이는 제품·서비스를 말한다.
해피문데이는 데이터를 활용해 생리 주기를 예측하고 개인 특성에 맞춘 제품을 정기 배송받을 수 있도록 한 여성 건강 앱을 출시했다. 앱은 출시 5년 만에 20대 여성들의 큰 호응을 얻으며 누적 300만 다운로드를 달성했다. 2021년엔 110억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하며 성장 기업으로 도약했다. 이러한 성공의 출발점엔 형편이 어려운 10대 여학생들의 생리대 문제에 대한 김도진(34) 대표의 관심이 있었다. 생리대 기부를 위한 펀딩을 시도한 것이 현재 사업의 첫 단추가 됐다. “돌이켜보면 실패라 여겼던 시간도 하나님이 길을 열기 위한 준비였다”고 말하는 김 대표를 최근 서울 성수동에서 만났다.
실패를 통해 배운 하나님의 경영 수업
고교 시절부터 사업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서울대 경영학과에 진학했다. 그는 “아이폰 출시로 앱 시대가 열리며 스타트업이 퍼지기 시작할 때여서 휴학 후 인턴으로 일하며 사업 개발과 초기 투자 유치를 경험했다”고 말했다.
복학 후에는 서비스 기획을 공부하며 스스로 준비됐다고 여겼지만 졸업 후 첫 창업은 보기 좋게 실패로 끝났다. 나름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지만 성과는 없었고 절망만 남았다. 이후 스타트업 투자사에서 일했지만 맞는 옷이 아니었다. 김 대표는 “나는 투자자가 아니라 직접 일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면서 “1년의 갭이어 동안 하나님과의 관계를 깊이 돌아보고 삶을 그분께 맡기며 내려놓는 시간을 가졌다”고 고백했다.
“목회자의 자녀로 자라며 아버지와의 대화, 그 삶을 통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제 마음 한편엔 ‘내가 열심히 했으니 이만큼은 온 것 아니겠는가’하는 교만이 있었던 것 같아요. 하나님은 내 삶의 주인 되심을 온전히 고백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깔창 생리대’서 시작된 ‘해피문데이’
그런 내적 갈등 속에서 신앙을 돌아보던 김 대표에게 결정적 변화를 가져온 계기는 2016년 보도된 ‘깔창 생리대’ 사건이었다. 그는 “10대 여학생들이 생리대 대신 신발 깔창을 쓴다는 뉴스 내용은 내 마음을 큰 충격으로 흔들었다”고 떠올렸다. 처음엔 단순히 ‘여성 청소년들에게 생리대를 기부하자’는 마음으로 지인들과 펀딩으로 500만원을 모았다. 그런데 자신 역시 십여 년에 걸쳐 생리대를 사용해 왔지만 좋은 생리대가 무엇인지, 어떤 제품이 기부에 적합한 제품인지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김 대표는 “기부 대상 청소년들 가운데는 어머니의 부재로 월경기에 필요한 정보와 도움을 받지 못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모르는 것부터 해결해야 했다. 생리대 기부와 함께 청소년을 위한 초경 가이드북 ‘어바웃 문데이’를 발간했다. 김 대표는 좋은 생리대의 기준을 세우고 1년간 공장을 찾아다니며 안전한 원재료를 고민한 끝에 흡수력은 뛰어나면서도 인체에 무해한 유기농 생리대를 개발했다. 그리고 2017년 7월 해피문데이를 창업했다.
김 대표는 “해피문데이라는 이름은 매년 돌아오는 생일을 반기는 인사말 ‘해피 버스데이(Birthday)’에서 착안한 것”이라면서 “월경(Moon Day)이 보다 편안하고 행복해지기 바라는 의미를 담았다”고 말했다.
IT 경험만 있던 그는 좋은 품질의 제품을 만들기 위해 제조·물류 현장의 프로세스를 온몸으로 부딪치며 배웠다. 그렇게 개발한 좋은 제품을 합리적 가격에 제공하기 방안을 찾은 게 생리대 구독 모델이었다. 구독 모델을 개발하면서 정기배송과 직접 판매로 유통 마진을 줄이고 반복 매출을 확보해 가격을 낮출 수 있었다. 매달 정해진 일자가 아닌 여성 개인의 월경주기에 맞춰 제품을 보내주는 월경구독 배송 기술로 특허도 얻었다.
“하나님은 상상치 못한 길 보여줘”
2020년 해피문데이는 월경 주기를 정밀 예측하고 신체·기분 변화를 기록하며 관련 콘텐츠를 제공하는 앱을 출시했다. 기록에 집중하는 기존 월경 앱과 달리 관리에 포커스를 맞춘 해피문데이는 약 5만건의 데이터로 정확도를 높였다. 또한 탐폰·질정 사용법 등 생활 밀착형 콘텐츠로 이용자들의 고민에 응답했다.
김 대표는 “10대 청소년이 해피문데이 앱 덕분에 월경을 이해하고 자기 몸을 더 사랑하게 됐다고 전했을 때 여성들의 삶에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 가고 있음에 큰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창업의 출발점이었던 생리대 기부도 멈추지 않고 있다. 한국지역아동연합회와 협력해 일회성 기부가 아닌 ‘걱정 없는 1년 캠페인’으로 3000여명의 청소년에게 생리대를 전달하고 있다. “학교에 비상생리대를 좋은 제품으로 두고 싶다”는 어느 초등학생의 요청에도 기꺼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김 대표는 이 시대 창업가를 꿈꾸는 청년 신앙인들에게 “창업은 언제나 불확실성과 싸우는 길이지만 나는 그 과정 속에서 하나님이 동행하신다는 확신을 붙잡았다”며 “이 믿음을 붙잡고 세상 속에서 흔들림 없이 서 있을 때 하나님은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길을 보여주실 것”이라고 말했다.
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