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언이라며 건네는 섣부른 말
오히려 상처만 깊어질 수 있어
위로는 언제 귀를 열지 아는 것
오히려 상처만 깊어질 수 있어
위로는 언제 귀를 열지 아는 것
SNS 메시지로 종종 책 리뷰를 받는다. “작가님의 책을 읽고 ○○○를 느껴서요.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어 쪽지 보내요”로 시작하는 메시지가 대부분이다. 베스트셀러 작가들은 SNS 프로필에 “DM 확인을 안 합니다”라고 소개글을 올리는 경우가 많지만, 그렇지 않은 입장에서는 뜨문뜨문 DM을 확인한다. 장문의 리뷰를 보내주는 독자께는 감사의 답장을 보내고, 매우 감동스러운 쪽지가 오면 훗날 글감이 없을 때를 대비해 캡처해놓기도 한다.
며칠 전 거의 메일 수준으로 긴 DM이 왔다. ‘태도의 말들’을 최근에 다시 펼쳐봤다는 독자였는데 쪽지 말미에 질문을 하나 던졌다. “작가님은 언짢은 위로를 받아본 적이 있나요?” 친한 친구에게 불쾌한 위로의 말을 들었는데 기분 나쁨을 표현해야 할지 말지 고민이 된다며 내게 답을 구했다. 나라고 명쾌한 해답이 있을 리 만무하지만, 경험을 토대로 작은 조언을 건넸다. “오래 갈 관계라면 상대의 기분이 평온할 때 슬쩍 말씀하시고요. 잠깐 동안만 이어질 관계라면 그냥 넘기는 게 어떨까요?”
온라인 서점에서 책 잡지를 만들던 시절, 오은영 박사를 인터뷰했을 때 굉장히 도움 되는 이야기를 하나 들었다. 강력한 애착관계가 아닌 그냥 알고 지내는 사람과의 갈등은 조금 흘려 보내도 괜찮다는 것. “길을 지나가는데 어떤 아저씨가 어깨를 딱 부딪혔을 때, 되게 아프지만 의도가 없다면 굳이 그 아저씨를 불러 세우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렇지 않으면 악연이 생긴다”는 말을 듣고 나는 아이들이 지나가는 놀이터 앞에서 흡연하는 아저씨들에게 소리를 지르던 버릇을 고쳤다.
독자는 어떤 언짢은 위로를 들었기에 그저 책으로만 만난 나에게 고민을 털어놓았을까. 내가 괜히 조언이랍시고 불편한 말을 보태는 건 아닐까, 사실은 조언이 아니라 위로를 건네야 했던 게 아닐까. 섣부른 말이 상처에 소독약을 붓는 격이 되지 않을지 걱정됐다.
‘위로를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정독했던 실용서가 한 권 있다. 공감을 위한 훈련 캠프 ‘서로 돌보라(Help Each Other Out)’를 설립한 사회복지학 박사 켈시 클로가 쓴 ‘제대로 위로하기’. 원제는 ‘There Is No Good Card for This: What To Say and Do When Life Is Scary, Awful, and Unfair to People You Love’.
‘사랑하는 사람이 무섭고 끔찍하고 불공평한 일을 겪을 때, 이 상황에 꼭 맞는 정답 같은 건 없다, 무슨 말을 해도 부족한 순간’이라는 제목에서부터 누군가를 위로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미션인지를 알 수 있다.
클로는 자신이 주관한 공감 캠프에서 900여 명을 대상으로 위로와 관련된 개인의 경험을 매우 상세하게 조사했다. ‘어려운 일을 겪었을 때 어떤 말이나 행동이 도움이 되었는지’를 설문, 심층 인터뷰를 통해 일일이 살폈다. 이 책에서 나를 강력하게 흔든 한 문장은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라고 네게 말하는 사람에게, 내가 제일 먼저 한 대 칠 수 있게”였다. 누구나 이런 경험, 한번쯤은 있지 않나?
저자는 “위로는 상대방에게 이렇게 느껴야 한다고 알려주는 것이 아니다”며 그 때문에 다음과 같은 충동이 이는 것을 참으라고 조언한다. “상대가 어떤 감정일지 알겠다고 한다, 문제의 원인을 분석해준다, 힘든 상황에서는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 알려준다, 비관적인 태도로 반응한다, 상대방의 어려움을 과소평가한다, 긍정적인 생각을 강요하거나 상투적인 말로 상황을 좋게 표현한다, 힘들어하는 상대방에게 ‘강하다’ ‘성인처럼 보인다’고 말한다.”
한 톨도 빠짐없이 긍정할 수밖에 없는 타당한 조언들. 얼마간 위 목록을 노트에 적어놓고 누군가를 위로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오면 체크리스트를 다루듯 꼼꼼히 살폈다.
위로에 정답은 없다. 다만 선택할 수는 있다. 언제 귀를 열어야 하는지, 어떤 표현으로 응답해야 하는지.
엄지혜 작가·에세이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