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 메가트렌드와 공실, 갈림길에 선 도시 상권

입력 2025-09-11 00:33

몇몇 핫플레이스 호황이지만
여전히 증가하는 상가 공실률

단순한 경기침체 때문 아니라
소비행태 변화가 근본적 원인

기존 상업지역 규제 방식 대신
유연, 탄력적인 도시계획 필요

열대야 현상이 한창이던 지난여름 주말 저녁, 모임이 있어 서울 종로 근처를 찾은 적이 있다. 모임 시간에 많이 늦어 지하철 1호선 종로3가역에서 가장 빠른 길을 검색하니 익선동 한옥거리를 통과하는 경로가 나왔다. 밤 8시가 조금 넘은 시각, 역에서 몇 분 걸었을까. 좁은 골목마다 식당과 주점이 내놓은 테이블이 손님들로 가득 차 있어 걸음을 재촉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핫플레이스를 증명하듯 대부분 청년들과 외국인 관광객들로 붐볐다. 비슷한 장면은 성수동 골목상점가에서도 목격된다. 청년층과 외국인 방문객이 끊이지 않는데, 지난 몇 년간 생활인구와 점포 매출액이 모두 상승한 핫플레이스로 꼽힌다.

그러나 서울의 도심 상권이 모두 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과거 대학 문화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던 신촌 일대는 통계를 보더라도 지난 5년간 생활인구와 매출액이 모두 감소했고, 올해 상반기 공실률은 서울 평균보다 높다. 소비 패턴이 변하면서 역사와 문화의 장소성이 강한 곳, 볼거리가 많거나 체험·이벤트를 제공하는 상권은 여전히 성장하지만 단순 판매 중심의 상권은 활기를 잃어가거나 상가 공실이 증가하고 있다. 문제는 전국적으로 공실률이 증가하는 상권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코로나19 이후 전국적으로 상가 공실은 계속 상승해 왔다. 2025년 2분기 기준 전국 소규모 상가 공실률은 7.5%를 기록했다. 중대형 상가는 이보다 2배 가까이 높고, 지방도시는 30%가 넘는 상권들도 다수 나타난다.

이처럼 상가 공실이 증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경기 침체가 원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배경에는 4차 산업혁명과 코로나19 이후 소비행태 변화라는 메가트렌드가 자리하고 있다. 첫째, 온라인 쇼핑의 폭발적 증가와 대형 복합쇼핑몰 선호가 전통 상업시설에 대한 수요를 대체하고 있다. 둘째, 비대면 회의와 원격 근무가 증가하면서 모임과 회식의 빈도가 감소하고, 여가·문화·체험 중심의 소비가 확대됐다. 셋째, 이런 변화에도 불구하고 획일적인 상업용지 계획과 상가 과잉 공급도 공실 누적의 원인으로 지적된다. 실제로 신도시의 인구 1인당 상업시설 연면적은 1기 신도시 때보다 줄었지만 여전히 상업시설이 과잉 공급되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 신도시 상가 공실이 쌓이거나 구도심이나 주변 도시의 상업 수요를 빨아들여 구도심 상가 공실이 증가하는 부작용을 낳는다. 기존 도심에서는 메가트렌드에 의한 수요 변화로 상가 공실이 늘고, 신도시와 같은 신규 개발 지역에서는 과잉 공급으로 상가 공실이 누적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렇다면 공공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상업시설 공급을 어느 수준으로 하는 것이 적정한가에 대해서는 여러 연구와 견해가 존재하지만 과거보다 상업 면적을 축소해야 한다는 주장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서울시와 인천시는 이미 상업지역 내 주상복합건물의 비주거 의무 비율을 10%로 낮춰 도심 내 주택 공급을 늘리고 상업시설 공급을 줄이는 정책으로 선회했다. 도심 공간을 주거와 업무, 상업이 공존하는 24시간 활기 있는 공간으로 조성한다는 의도다. 서울 도심처럼 상업시설이 충분한 중심지에서 야간 공동화 방지와 증가하는 도심 주택 수요를 위해 비주거 의무 비율을 완화하는 것은 바람직한 조치다. 다만 도시의 균형 발전과 직주 균형을 위해 새롭게 키우려고 하는 중심지에서는 충분한 비주거 공간이 확보될 수 있도록 탄력적으로 조정할 필요가 있다. 또한 상권이 활발해 장소성이 강하고 많은 관광객이 찾는 상업지역은 공동주택으로 전환되지 않도록 관리돼야 한다. 상업 공간에 대한 정책은 공급 조정에만 머물러선 안 된다. 이미 비어 있는 상업시설을 혁신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지혜도 필요하다. 온라인 쇼핑 증가에 대응하는 마이크로 물류센터, 공유 오피스, 체험형 매장 등으로 바꾸는 것도 한 방법이다. 필요하다면 주거 용도로 전환할 수 있도록 절차를 간소화해 도심의 안정적 수요 기반을 만들어주고 상가 공실 문제를 완화할 수 있다.

도시는 계속 진화한다. 과거 농경사회는 수천 년, 산업사회는 수백 년, 정보화사회는 수십 년에 걸쳐 도시 공간이 변화해 왔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4차 산업혁명 시대는 변화 주기가 훨씬 빨라 예측하기조차 힘들다. 상업공간의 수요 구조 역시 급격히 변화하고 있어 메가트렌드에 뒤처지지 않는 유연하고 탄력적인 계획이 요구된다.

우명제
서울시립대 교수
도시공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