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고성은 공룡의 발자취를 따라 역사를 거슬러볼 수 있는 고장이다. 우리나라 최초로 개관한 공룡 전문 박물관과 인근 상족암 해안 암반에 남아있는 발자국 화석이 ‘공룡의 나라’임을 대변해 준다. 챗GPT에 고성의 관광지를 물어보면 제일 먼저 알려주는 곳이다. 하지만 아직 덜 알려져 챗GPT도 답에 넣지 못하지만 놓치기 아까운 명소들도 적지 않다. 잔잔한 물결이 감도는 고성의 바다는 몸과 마음을 치유해 주는 ‘힐링해(海)’다.
고성의 가장 대표적인 명소는 하이면에 있는 고성공룡박물관이다. 실내 전시를 통해 공룡 화석과 관련된 다양한 자료를 소개하며, 어린이들에게 생생한 학습의 장이자 놀이 공간으로도 인기가 높다.
웅장한 해식애와 파식대가 어우러진 상족암이 지척이다. 시루떡처럼 겹겹이 쌓인 암벽이 파도에 깎여 1억 5000만년 전 공룡 터전의 흔적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천연기념물 제411호로 지정된 발자국 화석 250여개가 선명하다. 바닷물에 깊이 파인 미로 같은 굴은 인생샷 명소로 꼽힌다.
이곳에서 해안을 따라 1010번 지방도를 타고 동쪽으로 향하면 하일면과 삼산면에 둘러싸인 청정해역 자란만(紫蘭灣)에 이른다. 그 한가운데 작은 섬 자란도가 자리 잡고 있다. 자줏빛 난초(紫蘭)가 많이 자생해서, 또는 섬의 생긴 형세가 봉황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自卵)과 같다는 데서 이름이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상공에서 보면 하트(♥) 모양을 하고 있어 ‘하트섬’이란 별칭을 얻었다.
섬 면적은 58만9000㎡, 해안선 길이는 3.6㎞, 최고봉은 124m다. 용태마을 하중촌 선착장에서 1.1㎞ 정도 떨어져 있어 선착장에서 배로 5분이면 닿는다. 하지만 정기 도선이 없어 개인 배를 빌려서 타고 가야 한다. 섬에는 읍포와 사포의 두 개 자연 취락이 있다. 옛날 고을 원님이 살았다고 하여 읍포, 모래사장이 있었다고 하여 사포라 불린다. 섬 정상에는 성이 있었다고 하며 이 성에서 말달리기도 하고 또 말을 사육하였다고 전해진다.
삼산보건지소에서 77번 국도를 타면 다시 1010번 지방도로가 고성읍내로 향한다. 고성읍 신월리까지 이어지는 ‘해지개해안둘레길’도 인기다. 이 구간은 국토교통부가 남해안 해안경관도로 15선 중 하나로 선정하면서 이름을 붙였다. ‘해지개’는 ‘해가 서쪽 지평선이나 산으로 넘어가는 곳’을 가리키는 순우리말이다. 이 길의 하이라이트는 ‘해지개다리’다. 오목한 해안선을 가로지르는 폭 3.5m, 길이 209m 규모의 도보교다. 서쪽 바다로 넘어가는 노을을 담기에 제격이다. 어둠이 내리고 조명이 켜지면 낭만적인 분위기도 자아낸다.
고성읍내를 지난 1010번 지방도로는 거류면 거산리로 이어진다. 거산리와 마암면 삼락리 사이 바다에는 마동호 습지가 있다. 원래 바다가 육지 깊숙이 들어온 만이었으나 2002년 ‘마동호 건설사업’을 시작하면서 바닷물과 민물이 드나드는 기수역으로 바뀌었다. 34㏊의 갈대숲에 737종의 다양한 생물이 서식해 2022년 2월 국가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됐다. 고성군은 마동호 습지를 람사르습지로 등록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마암면에서 빼놓지 말아야 할 곳이 장산숲이다. 고즈넉한 연못과 정자가 어우러진 숲의 역사는 약 6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 태조 때 학자 호은 허기 선생이 마을의 지형적 결함을 보완하고자 숲을 조성한 것이 시작이다. 당시 길이가 1000m에 달했지만 지금은 약 100m 길이에 폭 60m 공간만 남았다. 조선 성종 때 퇴계 이황의 제자인 허천수 선생이 이곳에 정자를 짓고 연못을 조성하면서 단순한 산림을 넘어 풍류와 여유가 살아 숨 쉬는 공간으로 거듭났다.
장산숲 인근에 허씨고가가 있다. 조선 고종 2년(1865년)에 세워져 김해 허씨 4대 선조를 기리는 곳이다. 가옥 한 채와 2층 건물로 구분돼 있다. 조선 말기(1800년대) 우리 전통 건축 양식으로 지어졌으나 일제강점기에 일본 양식을 추가한 독특한 구조다.
여행메모
자란만 가리비 찜·해물탕에 입이 호강
내달 1일부터 당항포 ‘공룡세계엑스포’
자란만 가리비 찜·해물탕에 입이 호강
내달 1일부터 당항포 ‘공룡세계엑스포’
경남 고성군 하일면 고성공룡박물관과 자란만 등을 지나는 1010번 지방도와 77번 국도를 번갈아 달리는 드라이브 코스는 71㎞ 남짓 된다.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최단 경로 대신 바닷길로 달리는 것이 좋다.
상족암은 공룡박물관 아래 제전마을에서 다가갈 수 있다. 맥전포항과 상족암까지 조성된 탐방로의 중간 지점이다. 해안을 따라 설치된 산책로가 순탄하다.
자란만은 가리비 양식으로 유명하다. 식당에서 가리비는 주로 찜으로 내는데 가리비와 뿔소라, 낙지 등 싱싱한 해산물을 넣고 끓여내는 해물탕도 입맛을 돋운다. 자란만 구간에서는 학동마을옛담장으로, 고성만 구간에서는 송학동고분군으로 들어설 수도 있다.
동해면에서는 바다 건너 회화면의 당항포관광지가 보인다. 당항포는 400년 전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두 차례 승전한 임진왜란 최대 격전지 중 하나다.
당항포관광지에서 10월 1일부터 11월 9일까지 ‘공룡과 함께 춤을’이라는 주제로 ‘경남고성공룡세계엑스포’가 열린다. 하늘을 나는 대형 익룡, 공룡퍼레이드와 복원된 공룡을 만나볼 수 있는 공룡 5D영상관 등이 마련된다. 당항포관광지는 엑스포 준비를 위해 오는 30일까지 임시 휴장한다.
고성(경남)=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