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인천국제공항공사와 면세업계 간 임대료 분쟁에서 공사가 임대료를 낮추라는 내용의 강제조정안을 내놓으며 업계가 술렁이고 있다. 공사는 이의를 제기한다는 입장이지만, 업계는 법원이 ‘임대료 조정 필요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고 있다. 소송전과 철수 여부를 두고 실익을 저울질하는 모습이다.
9일 업계에 따르면 인천지방법원은 지난 5일 인천공항공사와 신라면세점의 법률대리인에 임대료를 25% 인하하라는 내용의 강제조정안을 송달했다. 비슷한 시기 임대료 조정 신청을 한 신세계면세점에도 조만간 비슷한 조정안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강제조정안은 법적 구속력이 없다. 공사 측이 2주 내 이의를 신청하면 효력을 상실하고 본안 소송으로 넘어간다. 공사 측은 ‘수용 불가’ 입장이다. 2023년 공항 면세점 입찰 당시 사업자들이 제출한 객당임대료 수준에 따라 낙찰자가 결정됐기 때문에 사후에 임대료를 낮추면 공정한 경쟁 질서가 무너진다는 이유에서다.
신라·신세계 등 면세사업자는 소송과 철수, 영업 유지 등 선택지를 두고 고심 중인 것으로 보인다. 다만 어떤 선택지도 만족스럽지는 않은 상황이다. 소송으로 넘어가면 인지세만 수십억원에 이르고, 재판 기간도 3~5년 이상 장기화할 수 있어 부담이 크다.
철수 가능성도 언급하고 있으나 위약금이 1900억원에 이르다 보니 이 또한 가능성이 낮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신라·신세계 모두 올해 아시아나항공의 2터미널 이전이 마무리될 때까지 일부 임대료 감면을 받고 있고, 2027년에는 1터미널 전면 리뉴얼 공사에 따른 추가 감면도 예상된다.
결국 매달 60억~80억원의 적자가 쌓이고 있지만 사업권 반납보다는 영업을 지속하며 추이를 지켜볼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다. 이 경우 시내 면세점 수익과 하반기 중국 단체 관광 재개 효과가 얼마나 이어질지가 관건이다.
면세점 업황은 부진을 거듭하고 있다. 한국면세점협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외국인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34.5% 줄어든 4조8415억원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외국인 방문객 수는 16.1% 늘어난 513만명이었지만, 1인당 구매액이 급감하면서 전체 매출이 줄었다. 지난 7월 면세점 매출은 9200억원으로 전년 동월 대비 8.6% 줄었고, 1인당 구매액은 35만6521원으로 16.3% 감소했다.
중국인 단체관광객 감소와 면세 소비 패턴의 시내 상권 이동, 온라인 직구 확대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인천공항 임대료 체계가 ‘여객 1인당 수수료×공항 이용객 수’ 방식이어서 매출과 무관하게 방문객이 늘면 임대료가 자동으로 증가하는 구조도 업계엔 부담 요인이다.
업계 관계자는 “면세점은 중국인 무비자 입국 효과를 기대하며 ‘버티기’를 택할 가능성이 커 보이지만 구조적 적자가 계속된다면 다시 철수 카드를 꺼낼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양측 모두 출혈을 각오하는 게임”이라고 말했다.
김성훈 기자 hunh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