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 현장에서 거푸집을 짜고, 콘크리트를 부은 후 양생(굳을 때까지 관리)하는 동안에는 노동자들이 다른 현장으로 이동해 다시 형틀을 짜고, 콘크리트를 붓는다. 그런데 고용허가제로 들어온 외국인들은 원칙적으로 한 공사 현장에만 있어야 하므로 이런 작업을 할 때 유휴 인력이 된다.”
건설업계 관계자의 말이다. 정부가 이 같은 건설 현장의 특성을 반영한 고용허가제 유연화 방안을 논의 중이다. 9일 노동계 등에 따르면 고용노동부는 전날 ‘건설업 고용허가제도 개선 관련 업무협의’를 열고 외국인 근로자를 한 공사 현장에만 묶어 같은 회사 내 다른 현장으로 이동하는 것을 제한하는 현행 제도를 유연하게 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노동부는 오는 15일 부처 합동 국장급 주재 회의 이후 관련 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건설업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 이동 제한 완화는 행정지침 개정 사항이며 국무총리실 산하 관계 부처 위원회 의결 사항이다. 법 개정을 하지 않더라도 제도 개선이 가능하다.
현행 고용허가제는 사업장 단위를 건설업체가 아닌 공사현장으로 본다. 고용허가제는 같은 회사의 개별 공사 현장이라도 개별 사업장으로 이해하고 규제를 적용한다. 고용허가제로 들어온 외국인 근로자는 원칙적으로 다른 사업장으로의 이동이 제한되며 공사가 끝나거나 중단되면 신고 절차를 밟아 다른 현장으로 이동할 수 있다.
이는 1사 1사업장(공장)이 대부분인 중소 제조업을 염두에 두고 설계된 것으로 건설업 실정에 맞지 않는다는 게 업계 주장이다. 건설업은 제조업과 달리 전국에 다수 공사 현장이 동시다발적으로 돌아간다. 또 특정 기간에 노동 수요가 집중되고 날씨, 사고, 문화재 발견 등 돌발 요인으로 공사가 중단되는 경우도 많다. 이 때문에 노동자들이 한 현장에만 있으면 공사 지연 시 유휴 상태에 놓이게 되고 사업주는 인건비를 낭비하는 셈이 된다.
건설업체들은 “동일 법인의 여러 현장은 사실상 하나의 사업장으로 봐야 한다”며 “공사 기간에도 외국인 근로자가 자유롭게 현장을 옮길 수 있도록 허용해 달라”고 요구한다. 외국인력 배정 기준을 현행 현장 단위에서 ‘업체 단위’로 전환하고 한 업체가 맡은 여러 현장 간 이동을 자유롭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법인에서 훈련받은 외국인 인력을 다른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어야 교육 비용 낭비를 줄일 수 있다는 점도 거론된다.
반면 노동계는 고용허가제상 사업장 단위를 법인으로 본다면 불법 행위로 인한 외국인 고용허가 제한 조처의 대상도 사업주로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재 불법 외국인 고용 등이 적발된 건설사는 업체 단위가 아니라 현장 단위로 고용제한 처분을 받고 있다. 현장 간 이동을 자유화할 경우 업체가 인력난이 심한 외진 지역이나 위험도가 높은 현장에 근로자를 강제로 배치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이에 이동 제한 완화 방향으로 개편하는 경우 근로자 동의 절차 등 보호 규정을 병행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정부는 여러 의견을 반영해 개선안을 낸다는 계획이다.
세종=황민혁 기자 ok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