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변호사 명의를 도용한 허위 테러 협박이 잇따르자 경찰이 일본에 수사진을 급파하는 등 범인 검거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경찰은 지난 2년간 잡히지 않고 있는 피의자 특정에 필요한 자료 확보를 위해 해외 수사 당국과 공조해 나갈 방침이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일본 변호사 사칭 협박’ 사건 수사를 위해 일본 경시청에 공조 수사 출장단을 파견한다고 9일 밝혔다.
해당 사건은 ‘가라사와 다카히로’라는 실존하는 일본 변호사 명의를 도용해 국내 주요 시설에 폭발물을 설치했다거나 테러를 벌이겠다는 내용의 팩스나 이메일이 발송된 것을 말한다. 2023년 8월 국내에서 처음 발생한 이후 지난달까지 총 51건이나 접수됐다. 첫 사건은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살해하지 않으면 국립중앙박물관에 폭발물을 설치하겠다는 이메일이었다. 이후 간간이 이어지던 사건은 지난달에만 10건이 접수되는 등 최근 횟수가 늘고 있다.
지난달 서울 소재 고등학교 7곳과 서울시청에 폭발물을 설치했다는 일본 변호사 명의의 팩스가 발송된 데 이어 이달에도 부산과 인천 지역 학교에서 비슷한 내용의 협박 팩스로 학생들이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팩스에는 한국어와 일본어가 병기돼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폭발물은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은 지난달 들어온 협박 팩스들이 미국의 한 웹팩스 업체 번호로 발신된 것을 확인했다. 이후 발신지와 가입자 정보 등 자료 확보를 위해 미국 당국에 공조 수사를 요청했다. 웹팩스란 팩스 기계가 아닌 인터넷에서 팩스를 송·수신하는 서비스다. 서비스가 지원되는 국가에서는 어디서든 발신이 가능하다.
해당 범죄의 원조 격은 일본이다. 일본에서는 약 10년 전부터 동일한 수법의 사건이 발생했다. 가라사와 다카히로 변호사는 2012년 일본의 극우 성향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악성 댓글에 시달리던 고등학생 변호를 맡았다가 극우 세력의 표적이 됐다. 이후 일본에서 가라사와 변호사를 사칭한 테러·살해 예고 팩스가 확산됐다. 30만건 이상의 팩스를 보낸 20대 일본 남성 2명이 2023년에야 체포됐다.
경찰은 일본 경시청의 담당 부서를 만나 유사한 일본 사건 관련 자료와 일본 내 용의자 파악 등을 요청할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허위 테러 신고범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도 강화할 방침이다. 국가경찰위원회는 지난 1일 폭발물 등 공중협박과 112 거짓신고 대응 강화 방안 계획을 의결했다. 허위 협박 신고에 따른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 이행을 강화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각 시·도경찰청의 손해배상청구심의위원회(가칭)가 허위 테러 신고로 손해가 얼마나 발생했는지 파악하고, 소송 여부를 경찰청과 협의해 결정하는 가이드라인도 포함된 것으로 파악됐다. 손해배상 청구액에 출동한 경찰 시간 외 수당뿐 아니라 정규 근무시간에 따른 급여까지 반영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최근 서울의 신세계백화점에 대한 허위 폭발물 신고 사건도 시·도청 차원의 논의 이후 소송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조민아 기자 mina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