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9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은 야당을 향해 “한번 붙어보자”고 외치는 선전포고 같았다. ‘내란’을 24차례 언급한 그는 국민의힘 의석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위헌정당 해산심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반면 ‘협치’는 한 번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 국민의힘에 12·3 계엄 사태의 사과를 요구하면서 ‘사과 없이는 협치도 없다’던 기존 입장을 고수한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 회동에서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와 악수를 나눈 지 하루 만에 정 대표는 야당을 의정 파트너가 아닌 청산 대상으로 취급했다. 국민의힘 의석에선 고성이 나왔고, 연설 도중 퇴장한 장 대표는 “여의도 대통령을 보는 것 같았다”고 했다.
전날 용산 회동은 이 대통령이 공을 들여 만든 자리였다. 야당과의 대화를 당연한 의무로 규정하며 미·일 순방에서 돌아오자마자 추진해 여야 대표의 첫 악수를 주선했다. “야당을 통해 국민의 목소리를 많이 듣겠다” 했고, “여당이 더 많이 가졌으니 많이 내주면 좋겠다”면서 여당의 양보를 주문했다. 민생경제협의체를 구성키로 합의가 이뤄져 협치의 첫발을 디뎠다는 평가가 나온 다음날 정 대표는 언제 그랬냐는 듯 대화 대신 대결을 선언하는 연설을 했다. 이는 대통령과 여야 대표가 마주앉아 대화하는 하루 전의 사진을 ‘그저 보여주기 위한 쇼였나’ 싶게 격하시키는 일이었다. 그 자리를 만든 이 대통령의 뒤통수를 친 것과 다르지 않다.
정 대표가 연설에서 언급한 여러 의제도 입법 독주의 우려를 지우기 어렵게 했다. “개혁은 타이밍”이라면서 당초의 속도전식 강경 노선을 고수했는데, 검찰청 폐지와 수사·기소 분리, 대법관 증원 및 법관 평가제 도입 등 사법 체계의 근간을 뒤흔드는 사안들을 그렇게 처리하겠다고 했다. 그것이 국민의 삶에 어떤 영향을 줄지 면밀히 살피기보다 강성 지지층의 입맛에 맞춰 서둘러 해치우려 하고 있다. 이런 식의 독주가 낳을 부작용을 막으려고 민주주의는 대화와 타협을 통해 작동하도록 설계됐다. 협치는 다수당의 선택 사항이 아니라 정당이 주권자인 국민을 위해 당연히 따라야 할 의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