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요환 목사의 새벽묵상] 십계명은 자유 대헌장이다

입력 2025-09-10 03:04

‘자유’라고 하면 많은 이들이 돈과 시간에서 벗어나는 ‘경제적 자유’를 떠올립니다. 조기 은퇴와 자산 증식을 말하죠. 최근에는 ‘파이어족(FIRE: 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이라는 용어로 불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돈과 일로부터의 해방이 곧 참된 자유인지 성경은 묻습니다. “무엇으로부터 벗어나는가, 그리고 무엇을 위해 사는가.”

역사 속 마그나 카르타(Magna Carta)가 폭주의 권력을 제한해 시민의 권리를 지켰듯, 하나님은 출애굽의 백성에게 십계명을 주셔서 죄와 사망의 폭군으로부터 지켜 주셨습니다. 순서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먼저 구원하시고, 그다음에 계명을 주셨습니다.(출 20:1~2) 십계명은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구원받은 자가 자유인으로 사는 길입니다. 자유는 권리 이전에 은혜의 선물입니다.

십계명은 두 가지 자유를 가르칩니다. 첫째 무엇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하지 말라”는 금지의 조항들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허나 이것은 불필요한 억압이 아니라 사랑의 울타리입니다.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말씀은 우상의 노예가 되는 것을 막고, 탐내지 말라는 말씀은 끝없는 비교와 불만에서 우리를 놓아줍니다. 울타리가 있기에 생명이 보존됩니다. 율법주의가 아니라 보호입니다.

둘째 무엇을 향한 자유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해방된 개인으로만 두지 않으시고 예배와 공동선을 향한 백성으로 부르십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는 명령은 가족과 종, 나그네와 가축까지 함께 쉼을 누리게 합니다.(출 20:10) 일과 돈의 굴레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예배하고 관계를 회복하는 적극적 자유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에는 “생명이 길리라”는 약속이 따릅니다.(출 20:12) 고령화사회의 한국교회에 더욱 절실한 자유입니다. 세대가 연결될 때 미래가 열립니다.

그럼에도 인간은 자유를 방종으로 바꾸기 쉽습니다. 출애굽기 32장의 금송아지 사건이 그 전형입니다. 오늘의 경제적 자유 담론도 탐심을 키우면 곧 다른 속박이 됩니다. 내 마음대로 시간을 쓰고 내가 원하는 대로 돈을 쓰는 길은 결국 마음을 묶습니다. 평안은 늘 멀어집니다.

복음은 여기서 시작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온전히 이루시고 우리를 자유케 하셨습니다. 변화산의 음성은 말합니다. “그의 말을 들으라.”(마 17:5) 야고보는 이 복음의 말씀을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이라 부릅니다.(약 1:25) 그래서 참 자유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흐르는 은혜의 순환 속에서 자랍니다. 받은 은혜가 감사가 되고, 감사가 나눔이 되고, 나눔이 다시 자유를 깊게 합니다.

김장하 선생은 평생 한약방을 하며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베풀었습니다. 도움을 받은 이들이 찾아와 인사를 전하면 “내게 고마워할 필요없다. 받은 은혜가 있다면 사회에 갚으라”고 말했습니다. 자유인은 은혜를 기억하고 흘려보내는 사람입니다. 주일에 멈추어 예배하고, 가정을 세우며, 이웃의 필요를 돌볼 때 자유는 현실이 됩니다. 작은 실천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 한 주에 한 번은 ‘멈춤’을 정하고, 말과 돈에서 정직을 지키며, 감사의 기록과 나눔을 생활화하는 것. 울타리는 생명을 지키고 습관은 자유를 굳힙니다.

십계명은 짐이 아닙니다. 우리를 살리는 사랑의 울타리입니다. 창조의 말씀으로 세상을 세우시고 출애굽의 말씀으로 언약 백성을 빚으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참된 자유로 부르십니다. 오늘 교회로 부름받은 성도가 그 말씀을 붙들고 자유인의 길을 걸을 때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의 자리가 선명해집니다. 자유는 내 마음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대로 사는 능력입니다.

(안산제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