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분열사, 갈라지는 건 쉽고 통합은 어렵다

입력 2025-09-11 03:13
1959년 9월 24일 대전중앙교회에서 열린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제44회 정기총회 모습. 이 총회에서 예장합동과 예장통합으로 분열했다. 국민일보DB

꼭 73년 전 오늘이던 1952년 9월 11일, 진주성남교회에서 한국 장로교회 최초의 분열이 일어났다. 1년 전 신사참배 정화 운동을 주장하던 고려파가 총회 다수파에 의해 축출될 것이 분명해지자 독립적인 총회를 조직한 것이다. 이는 1907년 네 개 장로교 선교부가 단일한 조선예수교장로회(독노회)를 세운 지 45년 만에 벌어진 사건이었다.

6·25전쟁으로 예배당이 불타고 성도들이 참화를 당하는 와중에도 고려파가 주도하는 정화 운동은 끝내 받아들여 지지 않았다. 교회당을 빼앗기고 마침내 총회에서도 쫓겨날 지경에 이르렀다. 분리주의자라는 오명까지 뒤집어쓰면서까지 교회의 거룩함을 지키기 위해 싸워야 했던 고려파 목사들의 고뇌를 우리는 쉽게 헤아리기 어렵다.

그로부터 1년 뒤인 1953년에는 한국기독교장로회가 분립했고 1959년에는 합동과 통합으로 교단이 다시 갈라졌다. 흔히 이 분열들을 성경관을 둘러싼 신학 논쟁의 결과로 설명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신학적 차이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 전쟁 직후 한국 사회는 극심한 빈곤과 혼란 속에 있었고 교회는 미국 선교부를 통해 들어온 구호품을 분배하는 기관이었다. 이 과정에서 선교사와의 친소관계, 지역감정, 교권 다툼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분명 신학적 문제로 다퉜는데 막상 분열의 결과를 보면 그 경계는 지역적 구도와 겹쳐 있었다. 고신은 부산·경남, 기장은 함경도·경기도·전라도, 통합은 평안도·경상도, 합동은 황해도 출신 목회자들이 중심을 이뤘다. 여기에 선교부의 영향도 컸다. 고신은 ‘메첸파’라 불리던 독립 선교부의 지지를, 기장은 캐나다연합교회 선교부의 뒷받침을, 통합은 미국북장로교 선교부의 지원을 받았다. 아무런 외부 지원이 없던 합동은 ‘국제기독교협의회’(ICCC)의 자금에 의존해야 했다. 50년 전 한국에 들어온 선교사들이 서로 충돌하지 않고 효율적으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 채택했던 ‘선교지 분할 정책’은 본래 연합정신의 산물이었으나 역설적이게도 훗날 교단 분열의 지역적 경계가 되고 말았다.

반세기 동안 지켜온 단일한 장로교회가 10년 사이 세 번이나 분열을 겪은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당시 사회가 서로를 ‘용공’으로 낙인찍으며 분열을 일상처럼 경험하던 시대적 분위기를 원인으로 볼 수 있다. 여기에 30년 전 미국에서 벌어진 ‘현대주의 근본주의’ 논쟁의 기억이 그대로 수입되면서 마치 한국교회도 동일한 전선에 서 있는 듯 갈등이 격화됐다. 세 차례 분열의 결과, 한국교회 안에는 서로 다른 신학적 스펙트럼을 대표하는 네 개의 교단이 자리 잡게 됐다.

첫발을 떼기가 어려웠을 뿐 이후 분열은 점점 쉬워졌다. 어느새 분열이 교회의 체질처럼 굳어졌다. 1970년대 이후의 분열은 1950년대와 달리 신학적 차이가 주된 이유가 아니었다. 교세와 재정이 커질수록 이권 문제가 불거졌고 총회마다 교권 다툼이 주요 원인이 되었다.

교회의 분열은 무엇보다 ‘그리스도의 몸’을 찢는 죄악이다. 교권주의와 지역주의, 물질적 이해관계에 따른 분열은 종종 진리 수호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지만, 실제로는 인간의 욕망과 죄악성이 낳은 결과였다. 그로 인해 한국교회는 사회로부터 싸우는 집단이라고 지탄받았고 대사회적 운동이나 투쟁에서 단일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선교 현장에서도 비효율적인 중복투자와 불필요한 갈등이 이어졌다. 어떤 이들은 한국교회가 분열을 통해 부흥했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분열에도 불구하고 부흥한 것이다. 분열 자체가 죄악일 뿐 아니라 그것을 정당화하는 것은 더 큰 해악이다.

이제 분열의 시대는 끝나야 한다. 양적 하락의 길을 걷는 한국교회는 이미 신학교 운영조차 어려운 교단이 속출하고 있다. 결국 이들은 통합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 파이가 커야 나눌 것이 있는데 이제는 나눌 몫조차 줄어들고 있다. “왜 꼭 교단이 통합해야 하느냐”를 묻는 대신 “왜 나누어진 채로 있어야 하느냐”를 물어야 한다. 제도적 통합을 반대하는 쪽이 오히려 입증의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통합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분열은 불가피한 역사적 상황과 인간의 무지, 그리고 죄가 뒤엉켜 나타난 현상이다. 따라서 과거의 불가피한 원인을 성찰하며 대화하고 그 과정에서 드러난 우리의 죄를 회개하는 길이 곧 통합의 과정이 돼야 한다. 그동안 누려온 기득권과 자랑스러운 이름, 유서 깊은 역사를 내려놓아야 할 수도 있다. 우리가 존경해 온 선조들의 민얼굴을 직면해야 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우리 안에 새겨진 ‘분리주의의 DNA’를 거슬러야 한다.

교단 통합은 그리스도의 몸을 향한 사랑에 불타는 이, 타인을 환대하는 겸손한 마음을 지닌 이, 동시에 하늘의 지혜를 가진 이만이 감당할 수 있는 사명이다. 그렇다. 분열은 쉽고 통합은 어렵다.

한국교회 선교 140주년을 맞아 6개월 동안 12회에 걸쳐 오늘의 한국교회를 형성한 사건을 살펴봤다. 현실을 아파하며 현실의 역사적 연원을 추적하려 했다. 애가(哀歌)를 쓰는 예레미야의 심정으로, 새로운 시대의 영광을 소망하는 에스겔의 소망을 담아.

장동민 교수(백석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