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뭄속 갈급한 영혼 새 힘 얻도록… 사랑의 생명수를 잇다

입력 2025-09-11 03:06
박만호(오른쪽) 부천 복된교회 목사가 최근 과테말라 치키물라주 ‘미나스 아리바 커뮤니티 스쿨’에서 학생들에게 허리를 숙인 채 도시락을 나눠주고 있다.

과테말라 월드비전의 ‘산 후안 에르미타 AP(Area Program·지역 개발 프로그램)’ 본부를 출발한 석대의 사륜구동 차량이 CA11 도로를 타고 북동쪽으로 향했다.

과테말라와 온두라스를 잇는 국제 교역로에는 대형 트레일러가 줄지어 달리고 있었다. 부천 복된교회 박만호 목사와 월드비전·국민일보가 참여한 ‘밀알의 기적’ 팀이 탄 차는 어느덧 도로 왼쪽 좁은 길로 접어들었다.

갑자기 경사도 15~20도를 오르내리는 가파르고 거친 산길이 나타났다. 포장된 구간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흙길이었다. 차가 오르기에도 버거운 길을 묵묵히 걷는 이들이 눈에 띄었다. 해발 1300m 고지에 있는 ‘미나스 아리바’ 마을 주민들이었다.

일행이 가는 곳도 이 마을에 있는 ‘미나스 아리바 커뮤니티 스쿨’이었다. 1학년부터 6학년까지 290여명이 다니는 학교다.

교문을 지나니 곳곳에서 아이들의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몇몇은 수업이 일찍 끝났는지 좁은 마당에 있는 시소를 타거나 2층 난간에 매달려 낯선 이들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봤다.

최근 인천국제공항을 출발해 과테말라까지 지구 반 바퀴인 1만3000㎞ 거리를 달려온 일행은 이틀 동안 과테말라 동부 치키물라주에서 월드비전이 진행하는 장기 개발 사업 현장을 돌아봤다. 이 학교는 첫 방문지였다.

수채물감으로 그린 것처럼 아름다운 학교였지만 실상은 물 부족에 시달리고 있었다. 몇 해째 비가 제대로 내리지 않았던 치키물라주는 우기인데도 비 소식 듣는 게 쉽질 않다. 과테말라는 해마다 5~10월이 우기로 연중 강우량의 대부분이 이 기간에 집중되지만, 이상기후로 ‘우기 가뭄’이 되풀이되고 있다.

이날은 간간이 내리던 비가 그친지 무려 28일이나 지났을 무렵이었다. 물 부족으로 공동체는 위태로운 상황에 내몰렸다.

에리카 아기레 교장은 “상·하수도 시설이 없다 보니 비가 오지 않으면 당장 마실 물이 없어 급식부터 중단했다”며 “집에서도 씻거나 청소를 못 하고 그나마 구하는 물도 깨끗하지 않아 각종 수인성 질병이 만연하고 있다. 가난이 일상이 이유는 바로 물 부족 때문”이라고 말했다.

마을 지도자인 리고 베르토씨도 “몇 해 전 우물을 팠지만 실패했다”며 “마을이 워낙 높은 곳에 있어 일반적인 시추로는 물을 찾기 어렵고 비용 문제로 추가 시추도 포기했다”고 했다. 그는 “산기슭 마을에서 물을 끌어 올리는 방법도 있지만, 전기가 많이 필요해 이마저도 어렵다”고 토로했다.

교실마다 2~3개씩 놓인 물동이는 가뭄이 일상이 된 현실을 여실히 보여줬다. 아이들은 하루에도 여러 차례 물웅덩이를 찾아 나선다. 가는 데만 한 시간 이상 걸려도 물이 있으면 집을 나서기도 한다고 했다. 물을 담으면 3㎏쯤 되는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다시 산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온다고 했다.

박만호 목사가 물동이를 이는 소녀를 도와주는 모습.

학교에서 나와 이 마을의 마지막 웅덩이를 찾았다. 지름 1m 정도의 웅덩이에 탁한 색깔의 물이 발목이 잠길 만큼 남아 있었다. 잠시 후 물동이를 든 브리세일라 페레스 로페스(14)양이 동생과 함께 이곳을 찾았고 익숙한 손짓으로 물을 퍼 담았다.

통역을 통해 하루에 몇 번이나 오고가는지 물었더니 “아 카다 라토(a cada rato)”라는 답이 돌아왔다. ‘틈날 때마다 온다’는 의미였다.

과테말라의 올 경제 성장률은 4.1%로 전망된다. 중앙아메리카 국가들 가운데서도 비교적 높은 수준의 성장세지만 고산지대에선 물이 없어 이처럼 고단한 삶을 살고 있었다.

호르헤 갈레아노 중앙아메리카 월드비전 디렉터는 “297년 동안 이어진 스페인 식민 기간 가난한 사람들이 산 위로 쫓겨났는데 그들의 후손이 지금까지 이곳에서 가난하게 살고 있다”면서 “벗어날 길이 사실 없다”고 설명했다.

다음 날 일행은 완전히 다른 형편의 학교를 찾았다. 성 안토니오 라야스 커뮤니티 스쿨은 월드비전이 후원하는 학교로 멀리 있는 저수지에서 물을 끌어오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이 덕분에 깨끗한 물을 아무 때나 쓸 수 있고 수세식 화장실도 사용할 수 있다. 이 공사에 필요한 돈은 미화 6000달러 남짓이라고 했다.

박 목사는 “물이 없는 절망의 학교와 물로 생명을 얻는 희망의 학교를 교차해 보면서 물이 공동체 안전을 위해 얼마나 중요한 지 새삼 깨달았다”면서 “외부의 따뜻한 관심과 후원으로 물을 선물할 수 있다는 사실을 통해 희망과 보람을 동시에 느꼈다”고 전했다.

이날 오후 마을 순회 진료를 하던 일다 레온 지역 헬스센터 책임자도 만날 수 있었다. 내과 전문의인 그는 “물이 없어 영양실조에 각종 질병까지 확산하고 있다”면서 “위생 교육도 하고 있지만, 물이 없어 제대로 된 실습도 못 하니 삶을 변화시킬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숙소로 돌아가 맞이한 저녁, 갑자기 하늘이 흐려지더니 잠시 소나기가 쏟아졌다. 오랜만에 내린 단비였다. 이 비가 이어져 메마른 땅과 삶을 적셔 주기를, 마음속으로 조용히 기도했다.

치키물라(과테말라)=글·사진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