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섬情談] 그래서 행복하냐?

입력 2025-09-10 00:34

힘들어도 정해진 근무 대신
보람 있지만 휴식 없는 업무
일상 회복할 방법은 없을까

주취야작(晝取夜作). 기자로 일하던 시절, 농담처럼 만들어 썼던 사자성어다. 기자의 삶이라는 게 그랬다. 낮에 취재 다니다 보면 어느새 해가 졌다. 수습기자 때 선배가 근엄한 표정으로 “원고 마감이 영어로 데드라인이야. 이 말이 뭔 말이냐. 넘기면 죽는다는 뜻이지”라고 말했다. 죽지 않으려면(?) 써야 했다. 매일매일 밤늦게까지 키보드를 두드렸다.

주말도 따로 없었다. 취재 일정이 주말과 평일, 낮과 밤을 가리지 않았다. 애인과 데이트하다 취재 수첩 꺼내야 했고, 퇴근길에 차를 돌려 현장으로 가야만 했다. 월간지 기자였다. 마감 주엔 사무실 소파가 곧 침대였다. 집에서 나올 때 “회사 다녀오겠습니다”라고 하는 것보단 사무실에서 “집에 잠시 다녀오겠습니다”라고 하는 게 맞는 표현이었다. ‘노가다판’에 뛰어든 여러 이유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균형이었다. 일과 삶을 분리하고 싶었다.

기자로 일하던 시절에 비하면 목수 일은 균형 그 자체였다. 매일 오전 7시에 일 시작해 오후 5시면 어김없이 퇴근했다. 그걸로 끝이었다. 기자로 일할 때처럼 풀리지 않는 기사 때문에 퇴근하고도 골머리 앓는다거나, 자려고 누웠다가 다시 일어나 노트북 여는 일 따위는 없었다.

현장에서 나와 안전모 벗는 순간부터 온전히 내 시간이었다. 잠만 좀 줄이면 생각보다 많은 걸 할 수 있었다. 매일 오후 6시부터 8시까지 글을 썼다. 저녁 먹고 1시간씩 산책했다. 책도 많이 읽었다. 그렇게 목수로 일하며 책 두 권을 냈고, 세 번째 책까지 탈고했다. 규칙적인 생활은 안정감을 줬다. 그 안정감으로 나는 삶의 활력을 얻었다. 몸은 피곤했으나, 정신은 늘 맑았다.

그러다 갑자기 IT 스타트업 마케팅본부장이 됐다. 벌써 넉 달째다. 얼마 전 선배와 통화했다. 변명하듯 내가 얼마나 열심히 사는지, 얼마나 많은 걸 배우고 있으며 그래서 얼마나 재밌는지 모르겠다고 마구마구 떠들었다. 내 얘길 한참 듣던 선배가 물었다. “그래서 행복하냐?”

대답하지 못했다. 분명 열심히 산다. 입사하고 단 하루를 못 쉬었다. 매일 오전 7시에 출근한다. 본부장이라기에 좀 편할까 슬쩍 기대도 했건만 전혀 아니다. 어제 업무 복기하고, 오늘 직원들에게 지시할 과업 파악하려면 2시간도 부족하다. 9시부터는 그야말로 전쟁이다. 끝도 없이 미팅하고 직원들 업무 가이드해주고, 보고서를 검토한다. 어느새 오후 6시다. 진짜 업무는 그때부터다. 직원들 퇴근하면 보고서 취합해 대표한테 보고하고 밀린 실무 처리한다. 그러다 보면 밤 10~11시다. 어떨 때는 12시 넘어 집에 들어간다.

배우는 것 많고 그래서 재밌는 것도 분명하다. 프로그램 언어 난무하는 IT 스타트업에서 문과 출신 ‘먹물’이 버티려면 배우는 수밖에 없다. 새로운 걸 배우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중국 시장 대상으로 마케팅하는 것도 그렇다. 선례가 많지 않다. 몸으로 부딪치는 수밖에 없다. 한 단계, 한 단계가 도전이다. 신대륙 개척하던 콜럼버스가 이런 마음이었을까 싶다. 하루, 일주일, 한 달이 후딱이다. 그렇게 벌써 넉 달이 지났다.

그러는 사이 일상이 완전히 무너졌다. 책 읽고 글 쓰는 게 낙이었는데, 책은커녕 마감해야 하는 원고만 겨우 쓴다. 외식하는 거 딱 싫어하는데, 집밥 먹은 게 언제인지 모를 정도다. 올여름엔 가까운 계곡 가서 발 한번을 못 담갔다. 가족, 친구 아무도 못 챙기고 오직 회사다.

“그래서 행복하냐?”라던 선배 말이 머리를 ‘퉁’ 쳤다. 미뤄뒀던 빨래와 집 청소부터 시작했다. 그것만으로도 개운한 기분이 들었다. 야근도 습관이라는 생각에 저녁밥만큼은 집에서 먹기로 결심했다. 어제는 오랜만에 장도 봤다. 앞으로 도시락을 좀 싸볼까 싶어, 장보러 간 김에 도시락통도 하나 샀다. 이런 다짐이 또 얼마나 갈지 모르겠다. 그래도 작심삼일이 열 번이면 한 달이라고 했다. 일상을 다시 회복해 보려 한다. 행복하다고, 대답하고 싶다.

송주홍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