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과는 차원이 다른 불로장생의 시대가 열린다면 어떻게 될까. 절대 늙지도, 쉽게 죽지도 않는 세상. 얼굴은 20대인데 마음은 90대인 ‘젊은 노인’이 수두룩한 사회. 이것은 인류에게 축복일까 저주일까.
일본 작가 야마다 무네키의 SF 소설 ‘백년법’은 이런 세상을 그린 작품이다. 소설 속 세계에서 대다수 사람은 20대에 불로화 시술을 받는다. 평생 젊음을 유지할 수 있으니 ‘청춘’이라는 단어는 그 빛깔을 잃는다. 많은 이는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고 출산율은 급감한다. 정년의 개념은 희미해진다. 청년의 취업문이 막히니 기업이 ‘혁신’을 도모하는 일도 사라진다.
이제 정부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세계 각국이 내놓은 해법은 생존 제한법 제정이다. 나라마다 생존의 커트라인으로 삼는 나이는 제각각인데, 일본의 경우 불로화 시술을 받고 100년이 흐르면 죽어야 하는 이른바 ‘백년법’을 만들기로 한다. 20세에 시술을 받으면 120세까지 젊음을 유지할 수 있지만 그 뒤엔 안락사를 당해야 하는 운명. 만약 이것이 실제라면 우린 받아들일 수 있을까.
국내 소설 중에서 초고령사회가 빚어낼 극단적인 디스토피아를 보여주는 작품으로는 박형서의 소설 ‘당신의 노후’를 꼽을 수 있다. 평균 수명이 늘면서 연금은 바닥을 드러내고 정부는 국고를 축내는 노인들, 특히 연금 초과 수령자를 은밀한 방법으로 죽이기 시작한다. 소설엔 이런 일을 하는 ‘공무원 킬러’가 등장하는데, 한 킬러는 이런 말을 내뱉는다.
“연금이 저축해둔 돈 찾는 게 아닌 거 알잖아. 생산인구 소득을 거둬 비생산인구들에게 나눠주는 거야. 왜 안 죽어? 응? 늙었는데 왜 안 죽어! 그렇게 오래 살면 거북이지 그게 사람이야? 요즘 툭하면 100살이야. 늙으면 죽는 게 당연한데 대체 왜들 안 죽는 거야! 온갖 잡다한 병에 걸려 골골대면서도 살아 있으니 마냥 기분 좋아? 기분 막 째져?”
언젠가부터 100세 시대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쓰이고 있지만 이것은 아직 허구의 개념이다. 지난해 미국의 한 연구진은 인간 수명의 한계를 분석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는데, 당시 내용을 보면 한국은 2019년 출생아 가운데 100세를 넘길 것으로 추정되는 비율이 남성은 1.5%, 여성은 4.7%밖에 안 됐다. 연구진은 “금세기에 급격한 수명 연장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인류에게 여전히 암을 비롯한 난치병들은 많은 이를 생사의 기로에 서게 만드는 무서운 질병이다. 근년에 지구촌을 휘저은 코로나19에서 실감했듯 인류는 여전히 온갖 감염병에도 무력하다. 그러나 현기증을 느낄 정도인 과학과 의학의 발전 속도는 인간의 수명이 그야말로 ‘퀀텀 점프’를 하는 불로장생의 시대가 조만간 열릴 수도 있을 거라는 기대를 품게 만든다.
얼마 전 중국 전승절 80주년 열병식에선 중국과 러시아 정상이 주고받은 대화가 화제가 됐다. “생명공학이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다” “불멸에 이를 수 있다” “이번 세기에 인간이 150세까지 살 수 있을 것으로 예측한다”….
과거라면 황당한 소리로 들렸을 대화였지만 많은 이는 이를 엉터리 흰소리라고 여기지 않았다. 왠지 그런 미래가 눈앞에 다가온 것처럼 느껴졌으니까, 지구촌의 손꼽히는 강대국 수장들이 내뱉은 말이었으니까. 그렇다면 머지않은 미래에 ‘150세 시대’가 시작된다면 어떻게 될까. ‘백년법’이나 ‘당신의 노후’에 등장하는 황당한 이야기도 현실이 돼버리는 건 아닐까. 이들 두 작품이 섬뜩하게 느껴지는 것은 불로장생의 시대를 미리 준비하지 않았을 때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그려냈기 때문이다. 인류가 그런 시대를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말한다면 너무 성급한 주문인 걸까.
박지훈 디지털뉴스부장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