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도구일 뿐… 교육 통해 자녀에 태도·배려 가르쳐야”

입력 2025-09-10 03:06
권장희 놀이미디어교육센터 소장이 최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빌딩에서 “인공지능 시대에 자녀의 창의력을 계발하려면 독서 등 문해력을 키우는 활동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장진현 포토그래퍼

“시키는 일을 잘하는 아이가 아니라 시키지 않는 일을 하는 아이로 키워야 합니다.”

30여년간 미디어 중독 예방 교육에 매진해온 권장희(61) 놀이미디어교육센터 소장의 첫 마디는 단호했다. 인공지능(AI)이 인간의 많은 직업을 대체할 것이라는 전망 속에서 부모들의 불안감도 커지는 상황, 권 소장은 다른 접근법을 제시했다.

최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빌딩에서 만난 권 소장은 AI 시대에 필요한 창의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이것은 위기가 아니라 기회”라고 말했다.

AI시대 살아남으려면

권 소장은 2005년 인터넷 게임 중독 예방 교육 민간 기관인 놀이미디어교육센터를 설립한 뒤 미디어 중독 예방 교육 분야에서 활동했다. 안정적인 교직을 뒤로하고 기독 시민운동가로 활동하며 미디어 문제에 천착하게 된 그는 두뇌 과학을 바탕으로 한 실질적인 자녀교육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최근 책 ‘브레인 페어런팅’을 펴낸 그는 과거 아이들이 많고 부모도 바빠서 아이들이 스스로 놀 수밖에 없었던 환경과 달리 지금은 자녀가 한둘뿐이고 부모가 과도하게 개입하는 경우가 많다고 짚었다.

많은 부모가 AI를 활용한 교육의 효과를 믿고 있지만, 권 소장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 그 근거로 두뇌 과학을 제시했다.

“AI는 정보는 많이 갖고 있지만, 도구일 뿐입니다. 교육은 단순히 지식만 전달받는 것이 아니라 전달 과정에서 감정 태도 방법까지 함께 배우는 것이죠.”

미디어가 두뇌에 미치는 영향

권 소장은 인간의 발달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감정을 주고받고 상대방을 배려하며 올바른 태도를 학습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AI와 소통하는 아이는 교사나 친구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배울 수 없다는 것이다. 두뇌 발달은 뉴런(신경세포)과 시냅스(신경세포 간 연결)의 생성과 연결을 통해 이뤄진다. 권 소장은 이 과정이 아이들의 선택과 경험에 의해 결정된다고 설명했다.

“아이들이 게임을 하면 두뇌는 오락실이 되고 책을 읽으면 도서관이 됩니다. 경험과 학습, 환경 변화에 따라 뇌의 구조와 기능이 유연하게 변할 수 있는 능력인 가소성 때문입니다.”

특히 미디어 노출이 도파민 시스템에 미치는 영향을 우려했다. “게임을 하면 도파민이 과도하게 분출되는데 두뇌는 이를 부담스러워해 도파민 생성을 줄입니다. 이것이 바로 내성입니다. 이로 인해 점점 더 강한 자극이 필요해집니다.”

그렇다면 AI 시대에 부모의 역할은 무엇일까. 권 소장은 “부모가 두뇌 발달의 첫 번째 도구”라고 강조했다. 그 핵심에는 ‘거울 뉴런’이 있다.

“태어난 지 30일도 안 된 아기도 엄마가 혀를 내밀면 따라 내밀어요. 거울 뉴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두뇌가 만들어집니다.”

따라서 부모가 아이에게 기대하는 것이 있다면 먼저 자신이 그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게 권 소장의 설명이다. “자녀들에게 ‘책 읽어라’ 하지 말고 부모들부터 먼저 책을 펴세요. 부모의 모습을 본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책 읽는 뇌로 활성화될 것입니다.”

언어 발달이 모든 것의 기반

권 소장은 AI 시대에 필요한 또 다른 능력으로 문해력을 꼽았다. “언어가 두뇌 발달의 기반 시설입니다. 도시를 만들려면 여러 기반이 있어야 하듯 두뇌 발달에도 길이 있어야 해요. 그게 바로 언어입니다.”

언어가 잘 발달하면 사고력과 학습력, 사회성, 절제력이 모두 따라온다는 게 권 소장의 주장이다. 문해력을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두뇌는 생존 기계이기 때문에 빠르고 쉽고 편한 것을 선택한다. 아이들에게 스마트폰을 쥐여주기 보다 독서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권 소장은 실제 상담 사례들을 통해 미디어 차단의 효과를 입증했다. 7세 쌍둥이를 키우는 한 어머니는 영어 공부 명목으로 하루 2시간씩 영상을 보여줬는데 권 소장의 조언을 듣고 미디어를 차단했다.

“처음엔 떼를 썼지만, 시간이 지나자 아이들이 차분해졌다는 피드백을 받았어요. 엄마가 다른 일을 해도 조르지 않고 자기들끼리 잘 지낸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사례로는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 집착하던 4세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다른 아이의 얼굴을 긁어 흉터를 낸 경우를 들었다. 권 소장은 이 가정에도 미디어를 차단할 것을 조언했고 아이의 심리적 상태는 금방 괜찮아졌다고 전했다.

권 소장이 제안하는 구체적인 실천 방안 중 하나는 ‘밤 10시 미디어 끄기’이다. 이런 습관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생활 리듬도 만들어준다. 실제로 세종의 한 교회에서는 이 캠페인을 도입해 가정 회복에 효과를 거뒀다고 덧붙였다.

권 소장은 자녀 교육의 궁극적 목표를 ‘하나님의 형상 회복’에 두고 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두뇌를 주신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이 땅에서 구현하라는 것입니다. 미디어를 잘 사용하는 것은 단순히 공부 방해를 막는 차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필수 조건이에요. 자녀를 명문대학에 보내는 것보다 좋은 그리스도인으로 키우는 것이 부모에게 주어진 진정한 부르심일 것입니다.”

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