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 26명으로 늘리면 지방법원 2개 소멸하는 꼴”

입력 2025-09-09 02:04
서울 서초구 대법원 깃발이 휘날리고 있다. 윤웅 기자

현재 14명인 대법관을 26명으로 늘리는 내용의 더불어민주당 사법개혁특별위원회 대법관 증원안이 외부에 알려지면서 여당의 ‘사법개혁 속도전’에 대한 사법부 내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법관 12명이 늘어날 경우 경력 14년 차 이상의 재판장급 법관 100명이 대법관을 지원하는 재판연구관으로 배치돼야 하고, 이는 곧 1·2심 재판 부실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민주당 사개특위 안은 매년 대법관을 4명씩 3년간 증원해 최종적으로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을 포함한 대법관 수를 26명으로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기존 ‘대법관 30명안’에 비해 증원 규모가 다소 줄었지만 대법관을 지금의 배 가까이 늘린다는 점에서는 기존 사법개혁 기조에 변함이 없다는 평가다. 대법관 증원을 통한 상고심 처리 지연 문제 해소는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했다.

그러나 사법부 내에서는 여권의 이 같은 대법관 증원안이 심각한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법원행정처가 지난달 29일 사개특위에 제출한 설명자료에 따르면 현재 대법관 재판 업무를 지원하는 재판연구관은 101명이다.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을 제외한 12명의 대법관 1인당 8.4명의 재판연구관이 배치된 꼴이다. 여기서 12명의 대법관을 증원하면 산술적으로 약 100명의 재판연구관이 추가로 투입돼야 한다. 현재 재판연구관은 일선 법원 재판장급인 14년 차 이상 법관을 차출하는데, 이는 서울 내 지방법원 2개가 소멸하는 것과 맞먹는 효과를 낼 것이란 게 법원행정처의 논리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8일 “재판연구관을 일선 법원서 빼가면 하급심의 부실화는 불을 보듯 뻔하다”며 “결국 하급심에 불복하는 사건 당사자들이 3심까지 사안을 다투게 되고 법적 분쟁이 장기화하는 지금의 악순환이 더 심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대법관 증원보다 하급심 강화가 시급하다는 점은 통계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1심 민사합의 사건의 평균 처리일수는 2014년 252.3일에서 2023년 473.3일로 늘었다. 반면 같은 기간 상고심 민사합의 사건 평균 처리일수는 203.9일에서 164.7일로 줄었다. 형사재판부 미제사건 건수도 1심의 경우 9만278건에서 12만377건으로 증가한 반면 상고심은 5657건에서 4660건으로 감소했다.

비용 측면도 고려돼야 한다. 법원행정처는 대법관 1인당 소요되는 예산을 133억원으로 추산하고 있다. 12명 증원 시 1596억원의 추가 예산이 필요하다. 현재 서초동 대법원 청사로는 26명의 대법관을 수용하기 어려운 만큼 대법원 청사 신축 필요성도 감안해야 한다. 대법원은 신축 비용만 1조4695억원이 소요되고, 8년 이상의 기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여당 사개특위 논의 과정에서 사법부 의견이 배제되고 있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지금 논의되는 상고심 구조개편 방안은 일선 법원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인데 사법부 의견은 논의 과정에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천대엽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은 지난 1일 전국 각급 법원에 사법개혁과 관련한 법관들 의견을 수렴해 달라고 요청했다. 오는 12일 대법원 청사에서 열리는 전국법원장회의 임시회의에서 수렴된 법관들 의견을 바탕으로 한 사법부의 공식 입장이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정현수 윤준식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