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10대 청소년들의 자해 예방을 다루는 대책은 여전히 초보적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청소년기의 특성에 맞춘 전문적인 프로그램과 정부의 재정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정부 차원에서 아예 대책이 없는 건 아니다. 고위기 청소년 맞춤지원 사업이나 자살·자해 청소년 대상 종합심리평가, 집중심리 클리닉 등의 정책이 추진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고위험 청소년 심리상담에만 초점을 맞춘 정부 대책은 방향성을 재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권일남 명지대 청소년지도학과 교수는 8일 “청소년들의 자해는 집단적 동조성을 띠고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외부활동을 통해 대인관계나 긍정적 방어기제를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며 “정부 대책 대부분이 상담이나 단체 연계에만 의존하고 있다”고 밝혔다. 허지원 고려대 심리학부 교수도 “청소년 자해 시도자는 전문적 상담과 약물치료가 병행돼야 한다”며 “전문화·특성화된 청소년 프로그램이 부족하다 보니 적절한 시기에 도움을 받지 못한 청소년이 생기기도 한다”고 말했다.
10대 청소년들의 자해 현황을 파악하기 위한 실태조사도 여전히 자리 잡지 못한 상태다. 대표적인 조사로는 아동종합실태조사, 청소년건강행태조사, 위기청소년 지원기관 이용자 실태조사 등이 있다. 하지만 자해 관련 내용은 최근에야 자살 문제의 일부 항목으로 소개되고 있을 뿐 별도의 공간이 마련돼 있지 않다. 아동종합실태조사의 경우 2023년까지 5년 단위로 진행돼 시의성 문제가 지적되면서 향후 3년 주기로 앞당겨졌다.
청소년건강행태조사는 설문조사 100문항 중 자해 관련 질문은 없다. 자살 관련 생각을 묻는 질문도 3개에 불과하다. 위기 청소년 실태조사의 경우 대상군이 상대적으로 명확한 편이지만 학교 밖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 통합적 대책의 기초자료로 쓰기엔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때문에 병원이나 상담 현장에서 자해청소년을 지원하는 이들과 정부 정책의 괴리가 커지고 있다.
교육부와 여성가족부, 보건복지부 등 부처 간 소통이 원활하지 않다보니 칸막이 행정의 한계를 탈피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컨트롤타워가 없어 포괄적으로 접근하지 못하면서 행정부의 전형적인 문제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여러 번의 자해는 자살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 신호임에도 ‘중2병’ ‘사춘기가 일찍 찾아왔다’는 식의 편협한 이해 때문에 예산 반영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스마트폰·인공지능(AI) 등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청소년들이 건강하게 자신의 감정을 표출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권 교수는 “자해 예방과 치료를 위한 제도적 기회가 부족하다”며 “청소년의 감정 표출을 돕는 장기적인 정책 확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유경진 기자 yk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