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한 처지에 놓인 또래들과 마음을 나누는 게 큰 위로가 됐습니다. 죽을 만큼 힘든 시간도 과거가 되는 날이 올 것이라 믿어요.”
10대 청소년 자해 문제에 경고등이 켜진 와중에 위기를 이겨낸 이들도 있다. 국민일보는 정신건강 비영리단체 멘탈헬스코리아에서 청소년 리더로 활동하는 10~20대를 심층 인터뷰했다. 이들은 우울증을 겪거나 자해·자살 시도 경험이 있지만, 서로 아픔을 보듬어주는 활동을 하면서 점차 나아지고 있다. 이 단체는 과거 심리적 어려움을 겪었거나 또래 정신건강에 관심 있는 청소년들이 직접 상담이나 강연 활동에 나서는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가정폭력을 겪던 이서정(22)씨는 중학교에 올라갈 때 자해를 시작했다. 한두 번이었던 자해는 계속 늘어났고, 결국 자살 시도까지 이르렀다. 이씨는 8일 “살고 싶은데 나를 둘러싼 환경에 좌절하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나를 해치는 것뿐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박모(17)양은 학업과 교우 관계 스트레스로 중학교 1학년부터 우울증을 겪었다. SNS에 자해 관련 검색을 반복했고, 교실에서 자살 시도까지 한 이후 학교를 떠나야 했다. 박양은 “자해는 단지 죽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라는 감정에 100번 공감하다”면서도 “하지만 자살 시도의 예고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고모(17)양은 중학생 때 갑자기 공황장애가 찾아왔다. 고양은 “경쟁적인 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나에 대한 기대가 부담스럽게 느껴졌다”며 “혼자라는 생각이 강해지면서 늪에 빠지게 됐다”고 말했다.
이들이 원했던 건 진정한 공감과 소통이었다. 이씨는 SNS에서 이 단체를 처음 접했다. 그는 “‘아픔의 전문가를 모신다’는 모집 문구가 마음에 와닿았다”며 “또래들과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모두가 조금씩 아픔을 갖고 있고, 그 색깔만 다른 게 아닌가라는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최근에도 나를 해치고 싶은 순간이 있었는데, 활동에서 만난 친구가 한달음에 달려와줘서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다른 친구들을 도와주는 활동에서 뿌듯함을 느꼈다고도 했다. 박양은 “나의 경험이 남들을 도울 수 있다는 점에서 자기 효능감을 느꼈다”고 밝혔다.
최근 단체 소속 학생들은 정신건강 커뮤니티 ‘마인드벨트’를 개발했다. 심리적 위기에 빠진 청소년들이 경험을 나눌 수 있는 사이트다. 사이트를 개발한 대학생 김연아(21)씨는 “어려움을 겪는 10대들에게 실질적 도움을 주기 위해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들이 어려움을 겪는 또래들에게 건네는 메시지에는 ‘공감’과 ‘위로’가 공통적으로 포함돼 있다. 이씨는 “너만큼은 아니었지만 나도 많이 힘들었어. 결국 나아지긴 하더라고. 덜 아프게 오늘을 살았으면 좋겠어’라고 말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박양은 “포기하지 않고 함께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자고 응원하고 싶다”고 전했다.
조민아 기자 mina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