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확산을 가로막는 걸림돌 중 하나가 가격이다. 배터리 등 고가 부품으로 인해 상승한 생산 원가는 판매가에 반영될 수밖에 없었다. 중국 신생 업체는 이 틈을 타 저가 공세로 전 세계 전기차 시장에 침투했다. 이런 상황에서 폭스바겐그룹이 본진인 독일에서 가격을 확 낮춘 전기차 4종을 한꺼번에 공개하며 대중화에 본격 시동을 걸었다.
폭스바겐은 지난 7일(현지시간) 독일 뮌헨 메쎄 박람회장에서 도심형 전기차 ID.폴로와 ID.크로스 콘셉트를 세계 최초로 공개했다. 둘 다 내년에 출시한다. 가격은 2만5000유로(약 4000만원) 수준으로 책정할 계획이다. 2027년엔 2만 유로 수준으로 가격을 더 낮춘 ID.에브리1을 내놓는다. 폭스바겐그룹의 또 다른 브랜드 쿠프라와 스코다도 각각 소형 전기차 라발과 에픽을 공개했다. 올리버 블루메 폭스바겐그룹 최고경영자(CEO)는 “(저가 전기차 출시는) 시장 점유율 확대에 더 큰 힘을 실어줄 것”이라며 “전기차 시장에서의 대대적인 공세를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폭스바겐그룹은 그동안 발전시킨 전동화 기술을 보급형 모델에 적용했다. 이날 공개한 도심형 전기차 4종은 폭스바겐그룹이 개발한 차세대 전기차 플랫폼 MEB를 기반으로 설계했다. 1회 충전으로 최대 450㎞ 주행이 가능하다. 성능을 유지하면서도 판매가를 끌어내릴 수 있었던 배경엔 견조한 판매량이 자리한다. 업계 관계자는 “전기차 판매량이 급증해야 대량생산을 통한 원가절감이 가능한데 장기화된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이 이를 가로막았다”고 설명했다. 폭스바겐그룹은 지난 1~7월 전 세계 전기차 판매량 69만4000대(전년 대비 68.6% 증가)를 기록하며 1위(중국 업체 제외)에 올랐다.
폭스바겐은 ‘ID.’ 뒤에 숫자를 붙이던 기존 전기차 네이밍 전략도 바꿨다. 숫자 대신 기존 내연기관차 이름을 사용하기로 했다. ID.폴로는 그 첫 번째 모델이다. 완성차업계 한 관계자는 “폭스바겐은 브랜드보다 개별 모델에 충성하는 소비자가 많다”며 “폴로나 골프 같은 베스트셀링 모델을 전기차 이름에 적용하면 소비자가 제품을 더욱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뮌헨=글·사진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