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필요한 일은 볼트·너트 조이는 단순 노동이 아니라 전문 인력이 필요한 노동이다. 미국에서 쉽게 구하기 어려운 인력인데도 비자를 구실로 토끼몰이하듯 단속하는 게 말이 되느냐.”
7일(현지시간) 미국 조지아주 포크스턴의 이민세관단속국(ICE) 구금시설 앞에는 아침 일찍부터 한국인들의 긴 줄이 늘어섰다.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HL-GA)에서 일하다 지난 4일 체포·구금된 동료들을 면회하러 온 한국 직원들의 대기 줄이었다. 100여명이 초조한 얼굴로 각종 서류와 휴대전화를 손에 들고 차례를 기다렸다. 정부의 석방 교섭이 마무리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라 비교적 안도하는 모습이었지만 여전히 불안과 불만의 목소리가 교차했다.
LG에너지솔루션의 한 협력업체 직원 A씨는 “ICE 급습 당일 E-2(주재원) 비자를 갖고 있어서 신원 조회를 하고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다”며 “한국에서 전세기가 온다고는 하지만 미국에서 풀어줘야 갈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했다. 그는 ICE 급습 당시 상황에 대해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헬기 소리가 너무 커서 다른 소리가 잘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B-1(단기상용) 비자, ESTA(전자여행허가) 소지자는 거의 다 이곳으로 체포돼 왔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구금시설에 수용된 300여명은 대부분 LG에너지솔루션이나 협력사 직원들이다. 면회 온 이들도 대부분 같은 회사로, ICE 급습 당시 영주권과 E-2 비자 등을 소지해 빠져나온 이들이 많았다.
다른 협력업체 직원 B씨는 “담을 넘어 도망가려는 히스패닉 노동자에게는 위협 사격도 있었다고 한다”며 “영주권, 시민권을 가진 근로자만 가까스로 빠져나왔다”고 말했다. 그는 “특정 하청업체 직원들만 그날 유독 출근을 안 한 경우가 많았다”며 “히스패닉이 많은 업체들 사이에선 ICE 단속 소문이 돌았던 것 같다”고 전했다.
또 다른 한국 직원 C씨는 “구금된 한국인 직원들은 대부분 베이지색 수용복을 입고 있었다. 비교적 가벼운 혐의를 받는 이들이 입는 옷이라고 들어서 다행”이라며 “여성들이 구금된 스튜어트 구금시설에는 임신 초기 직원도 있어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스튜어트 구금시설은 포크스턴 구금시설에서 차로 3시30분 정도 떨어진 조지아주 서부 내륙 지역에 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 단속이 과도하다는 불만도 터져나왔다. 협력업체 관계자 D씨는 “여기서 하는 노동이 냉장고·세탁기 설치하는 단순한 노동이 아니다. 매우 민감한 전자장비를 설치하고 시운전을 하는 역할”이라며 “어떤 자격으로 한국으로 귀국하는지가 중요하다. 추방돼 가는 것이면 대체 인력을 구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면회는 낮 12시30분쯤 일방적으로 종료됐다. 오전 8시부터 줄을 섰던 상당수 한국 직원들이 동료를 만나지 못하고 허탈하게 발길을 돌려야 했다.
포크스턴(조지아주)=글·사진 임성수 특파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