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판사(출신)들을 만나 얘기하다 보면 검사보다 상대적 우월의식이 느껴질 때가 있다. 정치적 상황에 따라 수사 대상과 강도를 다르게 적용해 개혁 대상으로 떠오른 ‘정치 검찰’과 달리 법원은 누구를 재판하든 공평히 판결해 왔다는 점을 은연중 강조한다. 판사에게 잘못 민원 했다가 괘씸죄로 오히려 역효과를 봤다고 토로하는 정치인 얘기도 들었다. 그래서인지 ‘검사스럽다’는 신조어는 있지만 ‘판사스럽다’는 말은 없다.
② 현 정부 들어 출범한 3대 특검법은 특별검사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적용했다. 특검은 직무가 끝난 뒤 1년 동안 자신이 수사·공소유지 등에 관여했던 사건을 변호사로서 수임할 수 없도록 했다. 특검 인선에 난항을 겪은 것도 이 조항 때문이었다.
김건희 특검팀을 이끄는 민중기 특별검사는 ① ②번 모두에 해당한다. 서울중앙지법원장을 지낸 민 특검은 대법원 재판연구관,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거친 엘리트 판사 출신이다. 임명 당시 검사가 아닌 판사 출신이 16개 혐의에 달하는 김건희 특검을 제대로 이끌 수 있겠느냐는 시각도 있었지만 김 여사 구속을 이끌어내는 등 순항하고 있다는 평가가 우세했다.
하지만 최근 민 특검이 자신의 사무실에서 통일교 한학자 총재의 변호인을 만났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다. 특검 측은 “일상적 인사를 나눈 것에 불과하다”고 해명했지만 민 특검 스스로 특혜 논란을 자초했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다.
특검의 해명대로 단순히 “차 한잔 줬을 뿐”이라고 치부할 사안이 아닌 것은 특검이란 지위가 가진 무거움 때문이다. 검찰을 믿지 못해 특별한 검사 제도인 특검을 만들었는데 민 특검은 기존의 ‘법조 카르텔’이 자행한 특별하지 않은 행동을 한 셈이다.
특히 민 특검이 자신이 배석으로 데리고 있던 법무법인 태평양 이모 변호사를 만나기 직전은 현 정부 초대 민정수석에 내정됐다가 낙마한 오광수 변호사가 김건희 특검 소속 모 특검보를 면담한 것이 논란이 됐던 때다. 당시 특검은 “원칙은 특검은 변론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특검만 그런 일을 하지 않으면 괜찮다는 논리를 취했는데 하루 새 자신들의 해명이 뒤집혔다.
할 말이 없어진 특검 측은 이 변호사가 통일교 사건을 수임한 사실을 알리지 않았고, 사건 관련 변론을 한 사실은 없다고 해명했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을 순진한 국민은 없다. 특검이 세운 원칙을 개인적 친분에 따라 무너뜨리면서 흔히 말하는 전관예우의 민낯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김 여사와 통일교 커넥션 의혹은 특검 수사에서 중차대한 사안이다. 통일교 측이 오 변호사를 비롯해 문재인정부 마지막 검찰총장을 지낸 김오수 변호사, 민 특검과 개인적 친분이 있는 이 변호사를 선임한 것은 어떻게든 전관예우를 기대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재명정부는 검찰 개혁을 이유로 검사라는 명칭을 없애 버리면서 한편으로는 상설 특검을 추진하고 있다. 검사는 믿지 못하지만 특검은 믿을 수 있다는 믿음이 깔려 있는데, 민 특검의 ‘차 한잔’은 이런 믿음을 무너뜨렸다. 현 정부가 그토록 믿지 못하는 검찰조차 2016년부터 방문 변론은 반드시 기록에 남기도록 하는 규정을 마련했다. 특검은 그런 검찰보다 나을 게 없는 행동을 한 셈이다.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을 고쳐 매선 안 된다는 격언은 진부해 보이지만 공적 권력을 다루는 자리에선 여전히 유효하다. 특검은 기존의 검사보다 더 높은 도덕성과 투명성이 필요하다. 이번 논란을 계기로 특검은 국민 앞에 더 엄정한 자기 검증과 절차적 투명성을 보여야 한다. 그래야 특검은 말 그대로 ‘특별한 검사’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이성규 사회부장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