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아내와 나는 지인 목사님 부부와 함께 미국 보스턴의 올드 노스 교회(Old North Church)를 찾았다. 1723년 세워진 이곳은 지금도 주일마다 예배가 이어지는 교회다.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체인지 링잉(change ringing)’ 종이 설치된 첨탑으로도 유명하다.
체인지 링잉은 17세기 영국에서 시작한 독특한 타종 방식이다. 단순히 선율을 연주하는 게 아니라 정해진 순서를 따라 종을 울리는데 그 순서를 계속 바꾸며 새로운 패턴을 만든다. 종 하나당 한 사람이 줄을 맡아 수천 번 당겨야 하므로 높은 집중력과 인내심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혼자서는 타종이 결코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여러 종지기가 서로의 순서와 리듬에 맞춰야만 전체의 울림이 완성된다.
나는 이전에도 이곳을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엔 예배당만 보고 돌아와 종에 관한 내용은 생소했다. 그래서 이번엔 첨탑에도 올라가 보기로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첨탑에서의 경험은 참 좋은 시간이었다. 첨탑 안내를 맡은 노년의 직원의 더딘 설명만 제외하고는 말이다. 그는 거동이 많이 불편해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내리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설명도 자주 끊기곤 했다. 교회의 설립 연도나 첨탑 완공 시기, 종의 무게 같은 기본 정보도 기억하지 못했다. 그때마다 뒤따라온 젊은 직원이 곁에서 놀랍도록 빈틈없이 그의 역할을 보조해줬다. 순간 ‘차라리 저 젊은 분이 이 일을 전담하는 게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란 생각이 스쳤다.
타종실에 들어서자 이런 생각은 금세 사라졌다. 이곳엔 여덟 개의 종과 연결된 줄들이 늘어져 있었다. 실제 타종 장면이 담긴 영상도 펼쳐졌다. 종지기들은 각자 맡은 줄을 서로의 순서와 리듬에 맞춰 당기면서 종의 울림을 완성했다.
그 장면 하나하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서로를 세우며 살아가야 하는지를 깊이 생각하게 했다. 여덟 사람이 하나 돼 각자의 종을 5000번 이상 울려 한 곡의 종소리(peal)를 완주하려면 두 시간이 훌쩍 넘게 걸린다. 그럼에도 지루하지 않은 이유는 종을 울리는 순서에 지속적인 변화를 주며 진행하기 때문이다. 만약 이런 귀 기울임과 변화의 조화가 우리네 삶의 현장 속에서도 실천된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그 상상만으로도 내 가슴에는 울림이 있었다.
다만 여전히 첨탑 안내를 맡은 노직원의 더딘 설명은 불편함으로 남았다. 그런데 아내가 뜻밖의 말을 했다. 그 노직원은 한평생 이 교회 첨탑과 종을 살피며 지낸 분이라고 한다. 이제는 나이 들어 기억도 예전 같지 않고 몸도 불편하지만 종에 대한 남다른 애정 때문에 안내를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젊은 직원의 도움을 빌려서만 진행할 수 있기에 미리 불편함에 대한 양해를 구하는 인사말도 있었다고 했다. 이는 뒤처져 있던 내가 놓친 설명이었다.
아내의 말을 듣고 보니 이보다 더 아름다운 실천은 없었다. 서로의 순서와 리듬에 맞춰 이어가는 울림은 교회의 종소리만이 아니다. 이날 올드 노스 교회의 첨탑이라는 작은 일터에서 노인과 청년은 함께 삶의 울림, 배려와 화목의 종소리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 울림을 놓치고 만 내게 깨달음의 기회를 다시 만들어준 아내가 새삼 고맙게 느껴지는 오늘 하루다.
박성현 (미국 고든콘웰신학대학원 구약학 교수·수석부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