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효율 중시 유럽인들, 이제 AI에도 눈 돌린다

입력 2025-09-09 00:16
8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 국제가전박람회(IFA)에 마련된 가전 기업 밀레 전시장 벽면에 ‘A-10%’가 큼지막하게 적혀 있다. 유럽연합(EU)의 에너지 레벨 중 최고 등급인 ‘A’ 보다도 전력 효율이 10% 더 높다는 의미다. 아래쪽 보쉬의 부스에도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지난 8일(현지시간) 삼성전자의 독일 베를린 국제가전박람회(IFA) 전시장. 한 현지인 노부부가 ‘비스포크 AI 세탁기’ 제품 설명에 적힌 ‘A-65%’ 부분을 손가락으로 짚으며 진지하게 대화를 나눴다. ‘A-65%’는 유럽연합(EU)의 에너지 라벨 중 최고 등급인 ‘A’ 보다도 전력 효율이 65% 더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남편 노아(67)씨는 “유럽은 여전히 전기나 가스 요금이 너무 비싸서 이를 무시하고 살 수가 없다”며 “가전 제품을 고를 때도 우선 눈길이 가는 부분이 바로 에너지 효율”이라고 말했다.

전시에 참가한 한국 기업들도 전기 값에 민감한 유럽 소비자를 안심시키기 위해 ‘고효율’을 적극 강조했다. 삼성전자는 비스포크 AI 세탁기와 더불어 인버터 히트펌프 기술로 모터 속도를 조절해 에너지 소비를 줄인 세탁건조기 ‘비스포크 AI 콤보’를 내놨다. 차세대 반도체 소자 ‘펠티어’와 컴프레서(압축기)가 동시에 적용돼 빠른 냉각이 가능한 ‘비스포크 AI 하이브리드 키친핏 맥스’ 냉장고 경우 에너지를 최대 25%까지 절감할 수 있다. ‘5년 내 유럽 가전 시장 1위’를 목표로 내건 LG전자 역시 A등급 대비 각각 70%, 40%, 10%씩 에너지를 적게 쓰는 세탁기와 바텀 프리저 냉장고, 세탁건조기를 전면에 배치했다.

유럽 시장을 누구보다 잘 아는 ‘본토’ 기업 역시 에너지 절약에 진심이다. 독일 가전 기업 밀레 전시장에 들어서자 벽면에 부착된 거대한 ‘A’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밀레는 이번 전시에서 자사 기준 역대 최고 수준의 에너지 효율을 달성한 ‘에너지 히어로즈’ 제품을 공개했다. 세탁기는 A-40%, 식기세척기는 A-10% 성능을 갖췄다. 유럽 가전의 전통강자 보쉬도 제품마다 ‘고효율’ ‘최고 효율’이라는 단어를 빼놓지 않았다.

변화에 쉽게 응하지 않는 유럽 시장이지만, 밀려오는 인공지능(AI) 파도 앞에서 조금씩 기류가 바뀌고 있음도 감지됐다. ‘AI 홈’을 전시 핵심 주제로 내세운 한국 기업은 각종 기술 시연으로 눈길을 사로잡았다. 관람객들은 로봇청소기와 스마트워치, 휴대폰을 연동해 집에 홀로 남은 반려견 ‘코코’를 돌보는 과정을 유심히 지켜보고, ‘나만의 세탁 코스 찾기’ ‘효율적인 식재료 관리’ 등 가전에 탑재된 AI 기능도 직접 체험했다. 전시장 관계자는 “AI 기술에 대한 거부감보다는 놀랍다, 혁신적이다 등 긍정적인 반응이 늘어나고 있다”며 “속도가 빠르지는 않지만, AI 기술은 뚜렷하게 유럽인의 일상까지 파고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럽 기업들도 AI 기술을 적용한 가전을 차츰 꺼내놓는 중이다. IFA에 맞춰 밀레가 선보인 ‘스마트푸드 ID’ 기능은 AI가 오븐에 내장된 카메라로 요리를 자동 인식해 최적의 조리 과정을 찾는다. 세탁기와 의류건조기, 식기세척기, 전자동 커피머신 등은 AI 진단을 통해 사용자가 간단한 오류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했다.

베를린=글·사진 박선영 기자 pom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