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 천안문 망루 위, 그 두 장면

입력 2025-09-09 00:38

2015년 중국 전승절 열병식
박근혜, 시진핑·푸틴과 참석

하지만 10년 뒤 같은 자리에서
‘반미 블록’ ‘반서방’ 기치 내건
북·중·러 3각구도 본격화

한·미·일 공조 공고화 속에
지렛대 활용 지혜 발휘해야

지난 3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중국의 전승절 열병식에 참석해 시진핑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나란히 천안문 망루에 선 장면은 외교상 의전 이상의 강력한 정치적 메시지를 담았다. 66년 만에 이뤄진 북·중·러 정상의 결집은 새로운 냉전 이미지를 부각하며 균열된 국제사회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열병식은 단순한 기념식이 아니라 현시점의 외교 지형을 시각적으로 규정하는 무대였다. 미·중 경쟁 속에서 열병식을 위상 과시용 이벤트로 삼은 시진핑은 “세계는 평화와 전쟁의 기로에 서 있다”는 경고와 함께 중국식 국제질서 구상을 강조했다.

꼭 10년 전인 2015년 9월 3일 천안문 망루 위에선 전혀 다른 장면이 연출됐다. 시진핑, 푸틴과 함께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나란히 올랐다. 북한 대표 최룡해는 오른쪽 끝줄에 서 있었다. 중국은 한국을 ‘오랜 친구’라고 불렀다. 10년 전 한국은 중국과 전략적 협력 동반자를 강조하며 G2 시대에 이른바 ‘안미경중’식 균형외교를 위해 노력했다.

중국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더욱이 중국은 그해 전승절을 맞아 이른바 반일 기억의 정치로 한·중 협력의 상징적 연출을 통해 동맹망의 이완을 노렸다. 한·미·일의 결속을 흔들려는 차원도 존재했다. 그 하이라이트가 박 대통령이 망루에 선 장면이었고. 그 장면은 한·중 간 밀착도 가능하다는 착시를 줬다. 그러나 사드(THAAD) 배치와 중국의 한한령 보복 이후 우리는 중국 리스크를 체감했다.

그로부터 10년 국제 역학은 드라마틱하게 변했다. 그사이 미국과 중국은 전면적인 전략적 경쟁을 시작했다. 특히 몇 년간은 미·중 전략 경쟁의 격화, 러시아의 전쟁이 동북아 외교 지형을 바꿔놓았다. 시진핑은 미국과의 패권 경쟁에서 반미 전선을 강화할 필요를 절감했고, 푸틴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서방에서 고립되자 동쪽으로 몸을 돌렸다. 여기에 북한은 핵과 미사일 개발을 가속화하며 존재감을 키웠다. 서로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면서 북·중·러 3각 구도가 다시 본격화된 것이다. 전쟁, 제재, 디커플링이 맞물리면서 2025년의 베이징 열병식은 반서방을 기치로 내건 무대가 됐다. 중국은 ‘반미 블록’에 대해 부정적 뉘앙스를 보였지만, 그 이벤트는 명백하게 서방 견제를 위한 결집용 연출이었다.

10년 전 푸대접을 받았던 북한도 이번엔 달랐다. 러시아에 전투병력을 대거 지원한 김정은은 베이징에서 외교적 위상을 끌어올렸다. 푸틴은 김정은의 지원에 공개적으로 사의를 표했고, 김정은은 “가능한 모든 것”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김정은에게는 더 이상 세계의 외톨이가 아니라 자신감 있는 외교인이라는 걸 과시하는 무대가 된 셈이다.

시진핑과의 만남도 마찬가지다. 과거 북·중 정상회담에선 ‘조선반도 비핵화’ 언급이 관례처럼 따라붙었지만 올해 회담에선 ‘비핵화’ 문구가 제외됐다. 이는 중국이 북핵 문제의 우선순위를 크게 낮추거나 최소한 공개적으로는 북핵을 더 이상 지렛대로 다루지 않겠다는 신호나 다름없다. 중국은 북한과의 운명공동체, 전략 조율 강화를 강조했을 뿐이다. 북한은 이미 핵·미사일 역량을 외교카드로 삼겠다는 의지를 공개적으로 보여줬고 핵보유국 지위 역시 협상 대상이 아니라는 의지를 거듭 밝힌 상태다. 이런 북·중 간 변화된 모습이 동시 작동할 경우 국제사회는 북핵 문제의 해법을 다시 짜는 게 불가피할 수밖에 없다.

결국 2015년 9월 천안문 망루 위 장면이 중국이 한국을 붙잡아 두려던 시도의 산물이고 부수적으로 북·중 간의 냉랭함을 보여줬다면, 2025년은 북·중·러의 공개 밀착과 함께 한·미·일이 맞은편에서 정렬하는 블록화를 상징한다.

물론 북·중, 북·러 양자가 아닌 북·중·러 3자 간의 강력한 연대가 언제까지, 또 어느 수준까지 이어질지는 알 수 없다. 이들은 국제 제재와 미국과의 무역 리스크 부담 등 각자 이해의 균열을 안고 있어 완전한 블록화는 어렵다. 연대의 상징성은 크겠지만 실질적 힘을 발휘하기엔 제한적이라는 얘기다.

어찌됐든 언제나처럼 한반도 문제에 대한 우리 정부의 고민은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다. 분명한 방향은 공고한 한·미·일 공조와 중국과의 전략적 소통 병행이다. 북·중·러의 결속을 막기는 어렵지만, 이를 완충하거나 지렛대로 활용하는 외교적 지혜는 발휘할 수 있다.

남혁상 편집국 부국장 hs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