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조기 항암 치료… 혁신 신약, 보험 급여 장벽 여전

입력 2025-09-09 00:10
게티이미지뱅크

암 초기 면역항암제·표적치료제
수술 전·후에 사용… 효과 확인
조기폐암 아테졸리주맙 급여 도전
첫 관문 통과… 다른 암종 확대 주목

암 치료가 진화하고 있다. 과거 전신 항암 요법은 주로 수술이 어려운 전이·재발성(4기) 환자들의 생존 연장을 목적으로 쓰여왔다. 하지만 면역 항암제 등 혁신 신약의 등장으로 이제는 암의 초기 단계부터 수술 전·후로 사용해 재발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전략이 여러 암종에서 권고되고 있다. 암 치료 전략이 조기에 암 재발을 방지하고 완치의 가능성을 한층 더 높이려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 중심에는 체내 면역 체계를 활성화해 암세포를 공격하도록 돕는 면역 항암제와 암세포의 발생이나 커지는 과정을 선택적으로 억제하는 표적 치료제가 있다. 둘 다 기존의 독성 항암제보다 부작용이 적고 효율적이다.

다만 이런 혁신 신약을 활용한 조기 암 치료는 아직 건강보험 급여의 문턱이 높다. 이에 따라 조기 암 치료의 사회경제적 가치에 대한 논의와 공감대 형성이 활성화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기 암은 보통 수술이 가능한 상태로, 병기로는 1·2기와 3A기일부(국소 진행 단계)가 해당된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조기 폐암에서 수술 후 면역 항암제 사용이 급여화의 첫 관문을 넘은 점은 혁신 신약의 암 치료 영역 확장의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진다. 실제 건강보험 적용이 되기까진 넘어야 할 산이 많지만 첫발을 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조기 폐암 항암 치료 급여화 청신호?

8일 의료·제약업계에 따르면 지난 7월 면역 항암제인 ‘아테졸리주맙(상품명 티센트릭)’이 조기 비소세포폐암 환자의 ‘수술 후 보조요법’으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암질환심의위원회(이하 암질심) 심사를 통과했다. 암질심은 신약의 건보 급여화 논의 과정(급여 신청→암질심-약제급여평가위원회-약가 협상-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의 첫 관문으로 여겨진다.

현재 조기 폐암에서 수술 후 보조요법으로 표준 항암제(백금 기반 독성 항암제)의 사용은 건보 적용이 되고 있으나 5년 생존율이 약 5% 개선에 그치는 등 효과가 제한적이다. 암 재발을 막기 위한 새로운 치료 옵션에 대한 미충족 수요가 큰 셈이다. 아테졸리주맙은 수술 후 보조요법으로 사용 시 환자들의 재발 및 사망 위험을 5년간 대조군 대비 50% 이상 낮추는 것으로 임상 연구에서 확인됐다. 이에 기반해 미국 종합암네트워크(NCCN)는 비소세포폐암 환자의 수술 후 보조요법에서 해당 약제를 가장 높은 수준으로 권고하고 있다.

전체 폐암의 80~85%를 차지하는 비소세포폐암은 완치 목적으로 암 제거 수술을 받고 난 후에도 20~70%에서 재발한다. 이번 아테졸리주맙의 급여화 도전은 이 재발 위험을 줄이는 장기적 효과를 데이터로 입증한 데서 가치를 인정받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면역 항암제의 조기 암 치료 영역에서 첫 급여 진입의 청신호가 켜졌음을 시사한다. 아직 급여 적용까지 약제급여평가위 심사와 약가 협상이라는 지난한 과정이 남아있으나 향후 다른 암종에서도 초기 치료의 중요성을 부각하고 관련 신약의 급여 논의를 가속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아테졸리주맙 외에 조기 폐암에서 수술 전 선행요법, 수술 후 보조요법, 수술 전·후 보조요법 등으로 니볼루맙(옵디보) 펨브롤리주맙(키트루다) 더발루맙(임핀지) 등의 여러 면역 항암제가 효능을 인정받아 허가됐지만 건보 문턱을 넘은 것은 하나도 없다.

조기 유방암 치료가 비용 더 적게 들어

다른 암종의 조기 치료에서도 높은 급여의 벽은 실감되고 있다. 유방암 영역에서 진행·재발암 치료에 기여했던 표적 항암제들이 조기 암에서도 효과가 확인됐고 이를 근거로 국제 가이드라인이 추가로 권고 사항을 제시했다.

예후가 좋지 않은 유형인 ‘HER2 양성 유방암’에서 표적 치료제인 트라스투주맙(허셉틴)과 퍼투주맙(퍼제타)을 병행하는 수술 전 선행요법을 시행하고 수술 후에도 1년까지 두 약제의 병용을 권고했다. 최근 발표된 10년 이상 장기 추적 데이터에 따르면 수술 후 보조요법으로 두 약제 병용 치료를 받은 국소 진행(림프절 전이) 환자군에서 사망 위험이 21%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HER2 양성 조기 유방암의 수술 후 재발을 막기 위한 보조요법은 현재 환자 자신이 100%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다.

최근 발표된 암 치료의 사회경제적 가치 분석에 따르면 전이·재발성 유방암 치료 비용은 조기 유방암 치료 비용 보다 훨씬 더 드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HER2 양성 조기 유방암 치료를 받은 환자의 사회적 가치는 전이성 단계에 비해 1.2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이유로 의료 전문가들 사이에선 암의 조기 발견과 조기 치료 효과에 대한 명확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국립암센터 혈액종양내과 안병철 교수는 “조기 폐암의 경우 암이 작을 때 면역 항암제를 쓰면 수술 전에 암이 사라지는 경우도 있고 면역체계가 암 유전자를 잘 기억해 재발을 좀 더 근본적으로 막아주기도 한다”면서 “면역 항암제의 등장으로 수술 전후 치료가 대세가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연세암병원 종양내과 조병철 교수는 “아테졸리주맙은 국내에서 ‘PD-L1 유전자 변이 발현율 50% 이상’인 폐암 환자들에게만 쓰이므로 건보 적용이 되더라도 비용 대비 효과성이 있다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PD-L1 변이 발현율 50% 이상인 폐암은 전체 폐암의 30%를 차지한다. 조 교수는 아울러 “방광암 두경부암 직장암 등 다른 암에서도 조기, 국소 진행 단계 항암 치료에 대한 유의미한 데이터가 쌓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최근의 항암 신약은 말기에 가까운 진행·재발성 암환자들 대상으로도 암 크기를 줄인 뒤 예전엔 어려웠던 수술까지 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예를 들어 전이성 위암에서 니볼루맙, 전이성 대장암에서 얼비툭스를 사용해 종양을 줄여서 수술함으로써 생존율을 높이고 일부에선 완치까지 바라보는 단계로 발전하고 있다. 진행성 암에서의 항암 신약들은 조기 암 치료 시보다 훨씬 더 폭넓게 보험 급여가 이뤄지고 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