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사시는 분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많은 분이 오실 줄은 몰랐네요.”
지난 6월 말 세종시에서 숨진 한 무연고 탈북민의 발인 예배를 진행한 산성교회(지성업 목사) 세종캠퍼스 탈북사역팀이 장례를 주관하던 통일부 직원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사망한 지 한참 지난 뒤 발견된 외로운 죽음이었기 때문이다. 그 탈북민은 산성교회 성도도 아니었다. 그러나 다른 탈북민 성도들을 통해 안타까운 죽음을 알게 된 교회는 그를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조문은 물론 장지까지 동행했다. 산성교회에서 북한회복사역을 담당하는 김효성 목사는 “북한을 품고 기도하는 성도들과 함께 그분의 마지막을 외롭지 않게 만들어 드릴 수 있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한 따뜻한 손길
탈북민은 우리와 한민족이지만, 다른 이민자보다 더 한국사회 정착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부정적인 시선과 배척하는 분위기 때문이다. 그런 이들에게 교회가 내미는 따뜻한 손길이 갖는 의미는 특히 크다. 산성교회가 탈북민을 새터민으로 부르며 그 사역에 공을 들이는 이유다. 교회는 교회 안팎의 탈북민들을 돕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세종캠퍼스의 한 목장에서 시작된 교회의 새터민 사역은 부서로 확장돼 현재 20여명이 참여하고 있다. 교회는 2년 전부터 예배에 나오는 10여명의 탈북민 성도를 한 목장으로 모았고, 문화사역팀과 함께 한달 한두 번씩 인근으로 여행을 가고 있다. 김 목사는 “함께 만남을 가지면서 공동체가 되어가고 있다”고 했다.
교회는 교회 안팎의 새터민을 돌보는 사역이 당장 열매가 없더라도, 긴 관점에서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지성업 목사는 “한국교회가 3만여명 탈북민을 돌봤으면 한다”며 “언젠가 북한을 자유롭게 오갈 때 셰르파처럼 북한 사역의 동반자가 될 이들”이라고 강조했다.
뿌리 깊은 탈북민 사역 “이제는 동행”
1977년부터 북한 선교를 이어온 서울 충현교회(한규삼 목사)는 실향민이 세운 교회라는 정체성답게, 탈북민 사역에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다. 탈북민 목회자가 이끄는 교회 18곳도 2019년부터 돕고 있다. 교구와 은퇴장로회, 안수집사회 등 부서가 일대일로 연결돼 재정 지원과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8월엔 처음으로 탈북민교회와 함께 몽골로 단기선교를 다녀오기도 했다. 탈북민이 섬김을 받는 이에서 섬기는 이로 성장한 셈이다. 통일선교부를 담당하는 최준호 목사는 “탈북민 교회가 시작된 지 20년이 다 돼간다”며 “그들의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일에 방점을 두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매달 셋째 주마다 주일 예배 후 여는 ‘통일선교기도회’도 2년째 이어지고 있다. 탈북민 출신 목회자가 설교자로 서며 충현교회의 성도 40여명이 모여 기도한다. 탈북민과 북한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해 2023년부터 통일선교사역자훈련도 실시했다. 지금까지 160여명이 이 훈련을 수료했다. 이 교회 성도이기도 한 탈북민 방송인 정유나씨와 함께 비무장지대(DMZ)도 방문한다. 최 목사는 “오래 신앙생활을 하던 탈북민 성도님이 지난해 권사 직분을 받으셨다”며 “탈북민 성도에 대한 인식 개선이 우리 안에서부터 좀 더 활발하게 이뤄지길 기도한다”고 했다.
한규삼 목사는 탈북민 목회자를 정기적으로 교회로 초청해 간담회를 열고 있다. “늦게까지 일하는 탈북민 성도를 위한 방과후 학교가 필요하다” “여름 성경학교를 단독으로 개최하기 어렵다” 등과 같은 사역 현장의 고민이 오간다. 교회에 다른 교역자가 없는 경우가 많아 안식월 등 휴식을 필요로 하는 목소리도 높다고 했다. 최 목사는 “그들이 원하는 지원 방향을 함께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북에 고향 둔 이들과 함께하는 공동체
신길교회(이기용 목사)는 ‘북향민’이라 부르는 탈북민 성도 150여명과 함께 신앙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북에 고향을 두었다는 뜻이다. 이기용 목사는 탈북민의 삶과 정착에 큰 관심을 두고 있으며, 그들의 필요를 채우되 말씀과 기도로 사역을 이끌어 가고 있다. 탈북민 40여명은 매주 멘토링 소그룹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주일 예배를 마치고 1시간 정도 모이는데, 매주 다른 주제를 다룬다. 어떤 주엔 설교 과외도 펼쳐진다. 북한선교위원회를 담당하는 최한일 목사는 “설교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을 놓고 일대일 말씀 양육을 하면서 이해를 돕는 식”이라며 “말씀을 어떻게 삶에 적용할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눈높이 교육을 한다”고 했다. 일상의 고충을 나누는 것도 이 모임의 중요한 목적이다.
그렇게 알게 된 각자의 형편에 맞춰 지원도 이뤄진다. 한 탈북민 성도가 장사를 시작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재정 지원과 함께 개업 후 찾아가 물건을 팔아주고 지역 홍보에 팔을 걷어붙인 적도 있다. 결혼식을 올리지 못한 탈북민 커플을 위한 합동결혼식도 열렸다. 장로 부부가 혼주석에 앉고, 성도들이 하객이 되어주는 따뜻한 풍경이 2년 전 펼쳐졌었다. 가전제품 등 혼수는 물론 신혼여행 비용도 교회가 지원했다. 설과 추석 등 명절이 더 외로운 탈북민과 함께 모여 음식을 나누고 풍성하게 준비한 선물도 수년째 전하고 있다. 최 목사는 “교회 1세대 탈북민 성도 중엔 새가족정착위원회에서 활동하며 다른 이를 돕는 분도 계신다”며 “탈북민을 향한 섬김과 돌봄으로 자리 잡은 분들이 건강한 공동체를 이루길 소망한다”고 강조했다.
신은정 기자 se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