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예산권까지 손 안에… 총리실 파워 더 세진다

입력 2025-09-08 00:03
김민석(가운데) 국무총리가 7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국무총리 서울공관에서 정청래(오른쪽) 더불어민주당 대표,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과 기념촬영을 한 뒤 제3차 고위 당정협의회를 위해 회의장으로 향하고 있다. 윤웅 기자

정부의 한 해 예산을 기획·편성하는 기획예산처가 국무총리실 산하로 가게 되면서 예산권까지 손에 쥔 ‘실세 총리’의 권한이 더욱 막강해질 전망이다. 이재명정부의 행정 장악력 또한 과거보다 훨씬 강력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정치권이 정부 예산마저 주무르게 되면서 예산 운용의 견제력 약화와 편향성 우려가 제기된다.

행정안전부는 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고위 당정협의회 결과 브리핑을 열고 경제정책 수립·조정과 세입, 세출 등 기능이 집중돼 있는 기획재정부를 기획예산처와 재정경제부로 분리해 개편한다고 밝혔다. 국무총리실 소속으로 신설되는 기획예산처는 예산편성, 재정정책·관리 기능과 함께 대규모 재정을 수반하는 중장기 국가발전전략을 수립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기획예산처장은 장관급으로 편성된다.

재정경제부는 경제정책 총괄·조정과 세제·국고·금융·공공기관 관리 등의 기능을 수행한다. 재정경제부 장관이 경제부총리를 겸임한다. 이 같은 내용의 조직 개편은 내년도 예산안 국회 심사 일정을 고려해 2026년 1월 2일부터 시행될 계획이다.

그동안 정치권에선 많은 재정이 드는 주요 사업을 시행할 때마다 기재부라는 산을 넘어야 해 ‘정부 안의 정부’ 노릇을 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각 부처의 자율성·전문성을 제약하고, 기재부 결정에 의해 사업 추진 여부가 좌우되는 것에 대한 성토가 잇달았다.

그러나 대통령 권한이 막강해지는 것에 대한 경계와 우려의 시선도 만만치 않다. 정치 권력의 예산안 운용을 견제할 제동 장치가 약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선출직이 아닌 총리에게 지나친 권한과 책임을 줌으로써 자칫 예산의 독립성을 해칠 수 있다는 불안도 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예산 기능을 독립 부처가 아니라 총리실 산하에 두면 정치적 변수에 더 크게 흔들릴 것”이라며 “총리실이 국회와 직접 예산 심사를 주고받는 구조가 되면 단기적인 정치 논리에 휘둘려 재정의 안정성이 약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창길 세종대 행정학과 교수도 “이번 분리 개편으로 재경부가 경제 분야의 전문 기능에 충실할 것으로 기대된다”면서도 “예산 편성에서 대통령의 역할이 커질 것에 대한 우려가 나올 수 있다”고 내다봤다.

정부의 한 해 살림을 책임지는 예산 기능은 이전에도 여러 차례 재조정을 겪었다. 1994년 김영삼정부는 재무부와 경제기획원을 통합해 재정경제원을 만들었지만 권한 집중 비판이 뒤따랐다. 98년 외환위기 직후에는 재정경제원을 재정경제부로 개편하면서 예산 기능을 대통령 직속 기획예산위원회와 예산청으로 떼어냈다. 김대중정부 때인 99년엔 두 기관을 총리실 산하 기획예산처로 합쳐 예산을 완전히 분리했으나, 2008년 이명박정부는 기획예산처와 재정경제부를 통합해 지금의 기재부를 출범시켰다. 이번 개편은 그로부터 17년 만의 권한 분산 회귀다.

최예슬 이누리 기자 smar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