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중국의 대표 가전기업들이 ‘국제가전박람회(IFA) 2025’에서 세계 시장 주도권을 놓고 다시 한 번 격돌했다. 유럽에서도 ‘필수 가전’으로 자리잡고 있는 로봇청소기와 차세대 디스플레이 기술의 집약체인 TV, 단순한 기능을 넘어 일상 전체로 파고드는 인공지능(AI) 기술까지 핵심 분야 전반에서 저마다의 경쟁력을 내보였다.
이번 IFA에서 가장 많은 주목을 받은 제품은 로봇청소기다. 로봇청소기 시장에서만큼은 삼성전자와 LG전자 모두 추격자 위치인 상황에서 중국 제품을 잡을 ‘야심작’들을 선보였다. 전에 없던 기술을 무리하게 적용하기보다는, 제품의 본질에 집중해 성능과 디자인, 안정성을 끌어올리려는 노력이 돋보였다. 삼성전자의 2025년형 ‘비스포크 AI 스팀’은 고온 스팀으로 세균과 악취를 없애고, 4.5㎝ 장애물까지 넘어갈 수 있도록 설계됐다. 자체 보안 솔루션 ‘녹스’를 활용해 최고 수준의 보안도 달성했다. LG전자는 좁은 유럽 가옥 구조를 고려한 ‘빌트인형’ 신제품 2종을 전시했다. 역시 독자적인 보안 기술 ‘LG 쉴드’을 적용해 중국 제품과의 차별화를 꾀했다.
이에 비해 중국 기업들은 ‘과감한 변화’를 단행했다. 유럽 소비자의 수요를 겨냥해 로보락과 드리미는 잔디깎이 로봇을, 에코백스와 모바 등은 ‘수영장 전용’ 로봇 청소기를 내놓았다. 여기에 로보락은 세탁기와 건조기, 물걸레, 진공청소기까지 하나로 합친 ‘로보락 4 in 1 클리닝 콤보’로 관람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TV 부문 역시 한·중 간 격차가 좁혀진 만큼 견제 역시 치열했다. 삼성전자는 세계 최초로 개발한 115형 ‘마이크로 RGB TV’로 기선 제압에 나섰다. 전시관 한켠에 조성된 ‘리얼 QLED 존’에는 “가짜를 사지 말고 진짜를 사세요(Buy Real Not Fake)”라는 문구도 내걸었다. 중국 TV 업체들이 퀀텀닷 소자가 없거나, 극소량만 함유된 제품을 QLED(퀀텀닷 발광다이오드) TV로 포장해 팔다가 소송까지 번진 일을 지적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이센스는 이에 맞서 지난 7월 출시한 ‘RGB 미니 LED TV’를 전면에 내세웠다. 역시 ‘RGB 미니 LED TV의 원조’, ‘116인치, 세계 최대 크기’ 등 특장점을 강조하려는 듯한 설명이 눈에 띄었다. 다만 하이센스 TV에 붙은 ‘미니’라는 표현은 삼성전자의 ‘마이크로’ 보다 제품의 LED 칩 크기가 5배 가량이 큰 것을 의미한다. TCL은 ‘163인치’ RGB 마이크로 LED TV를 기습적으로 공개했다. 하지만 삼성전자와 동일한 마이크로 RGB LED가 적용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현존 기술로 마이크로 RGB TV를 163형 크기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게 업계 관계자 설명이다.
AI 기술로 실현하는 ‘연결’ 분야는 국내 기업이 확연하게 앞선 모습이었다. 집 안을 넘어, 매장과 사무실, 자동차까지도 하나로 잇고 관리하는 AI 생태계를 만들어냈다. ‘스마트싱스’를 통해 여러 매장을 원격으로 관리하는 삼성전자의 ‘AI 스토어’, 캠핑카 등 모빌리티 영역까지 확장한 LG전자의 공간 솔루션 ‘슈필라움’이 대표적이다. 중국 업체들도 자체 사물인터넷(IoT) 제어 플랫폼을 기반으로 개별 가전에서 AI 기능을 실현했지만, 한국 기업처럼 폭넓은 공간을 유기적으로 활용하는 모습은 특별히 찾아볼 수 없었다.
베를린=글·사진 박선영 기자 pom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