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오후 4시30분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인근. 방문객으로 북적이던 한 카페의 전광판에는 ‘18잔 준비 중’이라는 문구가 떠 있었다. 주문번호를 확인하며 음료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붐비는 이곳은 중국의 밀크티 프랜차이즈 ‘헤이티’ 매장이다. 한 직원은 “이 정도면 한산한 편이다. 주말엔 30분 대기는 기본”이라고 말했다.
헤이티로부터 몇 걸음 떨어진 중국 아트토이 매장 ‘팝마트’ 앞에도 인기 캐릭터 상품 ‘라부부’를 얻으려는 인파가 줄을 섰다. 대로변의 생활잡화점 ‘미니소’에도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홍대 상권에 ‘헤이티-팝마트-미니소’로 이어지는 중국계 프랜차이즈가 상륙했고 소비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대학생 이모(25)씨는 “홍대에 오면 밀크티로 시작해 하이디라오에서 마무리한다”며 “하나의 루틴이 됐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중국 식음료(F&B) 프랜차이즈가 빠르게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밀크티 브랜드 ‘차백도’는 지난해 한국에 첫 해외 매장을 낸 뒤 곧 19호점 개점을 앞두고 있다. 중국 내 밀크티 1위 브랜드로 꼽히는 ‘미쉐’는 서울의 대학가를 중심으로 12개 점포를 운영 중이다. 헤이티는 강남·명동·홍대를 선점하며 입지를 굳혔다. 프리미엄 밀크티 브랜드 ‘패왕차희’도 최근 국내 진출을 본격화하고 있다.
중국계 외식업도 기세를 더하고 있다. 이날 오후 6시30분 훠궈 전문점 ‘하이디라오’ 홍대점의 대기 현황엔 ‘56팀·114분’이 적혀 있었다. 매장 관계자는 “주말엔 6~7시간씩 기다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2014년 국내에 진출한 하이디라오는 올해 대구에 11호점을 열 계획이다. 마라탕 체인 ‘탕화쿵푸’는 2022년 327개였던 국내 매장이 지난해 494개로 늘었다.
중국 브랜드의 공세는 이미 글로벌 무대에서 본격화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중국 식음료 기업들이 북미와 유럽 등 국제 시장에서 입지를 넓히고 있다”며 “이런 해외 전략이 매출 성장과 테이블 회전율 개선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하이디라오 해외 프랜차이즈를 운영하는 슈퍼 하이 인터내셔널 홀딩스의 지난해 매출액은 전년 대비 13.4% 늘었다. 미쉐는 전 세계 매장 수가 4만5000개에 이른다. 맥도날드를 제치고 매장 수 기준 세계 최대 식음료 체인이 됐다. ‘러킨커피’(중국명 루이싱커피)는 중국 내 커피 체인 1위에 오른 뒤, 지난 6월 뉴욕에 매장을 열며 스타벅스의 본거지인 미국 시장 공략에 나섰다.
중국 F&B 프랜차이즈 확산세에는 내수 부진이 자리한다. 중국 외식 전문 매체 훙찬망에 따르면 지난해 식당·카페·베이커리 등 300만곳이 중국에서 문을 닫았다. 역대 최고 규모였다. 홍찬망은 “지난해 (중국) 외식업계에서는 ‘축소’와 ‘점포 폐쇄’가 유행어였다. 철수·상장폐지·창업자 도주 등 부정적 소식이 잇따랐다”고 전했다. 글로벌시장을 돌파구로 삼게 된 배경이다.
한국은 해외 전략의 주요 무대로 꼽힌다. 트렌드 수용 속도가 빠르고 반응이 분명한 시장이어서다. 국내 소비자들은 C커머스를 통해 중국 제품에 익숙해졌고, 여행 경험으로 현지 음식에 대한 거부감도 낮아졌다. 차백도는 한국 진출을 발판 삼아 스페인·뉴질랜드·태국·말레이시아 등 10개국으로 뻗어갔다.
업계 한 관계자는 “과거에는 위생 문제나 낯선 맛 때문에 정착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지금은 SNS상에서 탄탄한 팬층을 쌓아가고 있다”며 “앞으로 더 많은 중국 브랜드가 진출하고 영향력을 키워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글·사진=신주은 기자 ju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