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남천문대 ‘VLT’ 현존 최고 성능
대기 없는 우주선 ‘제임스 웹’이 최고
망원경 클수록 천체 분해 능력 향상
새로운 발견, 세상을 보는 관점 바꿔
대기 없는 우주선 ‘제임스 웹’이 최고
망원경 클수록 천체 분해 능력 향상
새로운 발견, 세상을 보는 관점 바꿔
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망원경은 어떤 것이냐는 질문을 가끔 받는다. 내 대답은 늘 같다. 넓은 영역을 한 번에 볼 수 있으면서 동시에 각각의 작은 영역을 높은 분해능으로 자세히 볼 수 있는 망원경이 가장 이상적이라는 것이다. 그런 망원경이 세상에 있을까? 그런데 이런 망원경을 실제로 만드는 것은 생각보다 힘들다. 분해능은 별을 분해해서 볼 수 있는 능력이다. 망원경이 크면 클수록 분해능이 높아진다. 그래서 천문학자들은 더 큰 망원경을 만들려고 노력한다. 더 큰 망원경으로 관측하면 분해능이 좋아져 전에는 분해되지 않던 천체를 분해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천체에 대해 더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더 자세한 정보를 바탕으로 천체를 분석하면 그 천체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발견은 새로운 해석을 낳고 세상을 보는 관점을 바꿔놓곤 했다. 천문학은 그렇게 망원경의 성능 향상과 함께 발전해 왔다.
지상에 존재하는 가장 강력한 망원경을 꼽으라면 많은 천문학자들이 칠레에 있는 유럽남천문대가 운영하는 ‘VLT’(Very Large Telescope)를 선택할 것이다. 지름 8m짜리 망원경 4대를 연결한 망원경이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조금은 우스운 ‘아주 큰 망원경’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망원경은 4대의 망원경이 지름 16m짜리 망원경 1대의 효과를 낸다. 현재 지상에서 활약하는 가장 큰 망원경에 속한다, 분해능도 당연히 세계 최고 수준이다. 지상에 있는 망원경 중 천체를 가장 자세히 분해해 볼 수 있는 망원경이라는 말이다. 이 망원경의 반사경 넓이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반사경 넓이가 크다는 것은 집광력이 크다는 말이다. 집광력이란 단위 시간 동안 별빛을 모으는 능력이다. 집광력이 크면 같은 시간 동안 관측해도 더 어두운 천체를 더 잘 볼 수 있다. 같은 시간에 그만큼 더 많은 별빛을 모았다는 뜻이다. 그래서 망원경의 성능을 이야기할 때 집광력과 분해능의 크기를 비교한다. VLT를 지상에 존재하는 가장 강력한 망원경이라고 하는 이유는 집광력과 분해능이 가장 좋은 망원경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현재 우주공간에서 활동하는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은 반사경 지름이 6.5m 정도다. 지상에 있는 VLT에 비하면 반사경 지름이 더 작기 때문에 분해능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하지만 여기에는 또 다른 변수가 있다. 지구에는 대기가 있다. 지구 생명체를 보호하는 결정적 역할을 이 대기가 한다. 열을 적당히 붙잡고 있어 지구의 평균 온도를 올려놓았기 때문에 지구상에서 생명체가 번성할 수 있었다. 그런데 대기의 존재는 천문 관측에는 치명적인 문제를 일으킨다. 우주공간에서 오는 별빛이 대기를 통과하면서 산란되고 흡수되고 반사된다. 다시 말하면 대기 때문에 원래 그 별빛이 가지고 있는 정보가 손상된다. 우주공간에는 대기가 존재하지 않는다. 지상에 있는 VLT보다 반사경 지름이 작은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이 성능에서 VLT에 밀리지 않는 이유다. 반사경의 크기는 작지만 분해능이나 별의 이미지 선명도에서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이 강점을 갖는다.
현존하는 가장 강력한 망원경인 VLT나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으로 천체를 관측하면 아주 자세한 이미지를 얻을 수 있으니 그 천체에 대한 아주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들 망원경을 사용해 밤하늘 천체들을 관측하면 당장이라도 우주의 비밀을 다 풀 수 있을 듯하다. 그런데 현실은 좀 다르다. 이들 망원경으로 한 번에 관측할 수 있는 영역이 아주 작다는 문제가 있다. 망원경으로 한 번에 관측할 수 있는 하늘의 영역을 화각이라고 한다. 그런데 높은 분해능을 유지하면서 넓은 화각을 갖는 것은 기술적으로 아주 힘들다. 넓은 화각에서는 초점면이 평면이 아닌 곡면을 형성하게 된다. 화각을 넓히면 망원경의 시야 전체에서 동시에 선명한 상을 얻기 어려워진다. 아주 좁은 화각에서는 이런 상의 찌그러짐 없이 높은 분해능으로 관측이 가능하다. 화각이 넓어질수록 초점면을 평평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를 보정하기 위한 여러 복잡한 광학적 설계와 시공이 필요하다. 광학계의 제작 정밀도도 그만큼 높아져야 한다. 이런 이유로 실제로 화각이 크면서 분해능이 높은 망원경을 제작하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대부분 망원경은 관측하려는 목적과 용도에 따라 화각과 분해능 중 하나를 우선시해 설계하게 된다.
최근 가동을 시작한 베라 루빈 망원경은 화각과 분해능을 동시에 높인 것으로 유명하다. 지름 8.4m의 반사경을 가진 광각망원경이다. 화각은 3.5도에 이른다. 보름달의 겉보기 지름이 약 0.5도 정도니 보름달 7개 정도가 한 번에 보이는 넓은 화각이다. 그러면서도 화소당 0.2초 정도의 높은 수준의 분해능을 유지한다. 베라 루빈 망원경이 화각과 분해능을 모두 높은 수준에서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특수한 광학 설계에 기인한다. 주경, 부경, 3차 거울을 결합한 특별한 시스템으로 상의 왜곡을 최소화하면서 넓은 시야를 확보하도록 설계됐다. 현대의 최첨단 광학 설계와 시공 기술이 결합한 결과다. 또한 32억 화소 규모의 카메라로 189개의 전하결합소자(CCD) 센서 배열을 사용해 넓은 영역을 고해상도로 촬영하는 장치를 장착했다. 망원경의 초점면을 아예 곡면으로 설계해 빛의 왜곡을 줄이고 민감도를 높이는 기술이 도입됐다. 이에 더해 실시간으로 반사경을 조정해 대기 조건의 변화나 열팽창에 따른 반사경의 왜곡을 실시간 보정하는 기술을 사용하고 있다. 이런 최첨단 기술 덕분에 베라 루빈 망원경은 넓은 시야에서도 세밀한 관측을 가능케 하는 꿈의 망원경이 됐다.
이명현 과학콘텐츠그룹 갈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