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든 어떤 영화보다 관객 반응이 좋아서 이미 큰 상을 받은 기분입니다.”
신작 ‘어쩔수가없다’로 20년 만에 제82회 베네치아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해 수상 기대를 모았던 박찬욱 감독은 6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베네치아 리도섬 팔라초 델 시네마 살라 그란데 극장에서 열린 폐막식을 무관으로 마친 뒤 짧은 소회를 밝혔다.
지난달 29일(현지시간) 베네치아영화제에서 최초 공개된 ‘어쩔수가없다’는 뜨거운 현지 호평을 받았다. 작품상 격의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이나 주연배우 이병헌의 남우주연상 수상 가능성이 거론되기도 했다.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모든 부문 수상이 불발됐다. 한국영화가 황금사자상을 받은 건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2012)가 마지막이다.
외신에서도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미국 할리우드 리포터는 “한국 거장 박찬욱의 기발한 블랙코미디가 평론가 사이에서 영화제 최고 화제작으로 꼽혔으나 빈손으로 돌아가게 됐다”고 전했고, 로이터통신도 “박 감독의 ‘어쩔수가없다’가 호평에도 불구하고 수상에 실패했다”고 보도했다.
이번 영화제에서의 성과가 없진 않았다. 북미와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등 200여개국에 선판매돼 순 제작비를 충당할 만한 수익을 거뒀다. 다음 목표는 오스카다. 내년 미국 아카데미(오스카) 시상식 국제장편영화 부문에 한국 대표로 출품됐다. 그보다 먼저 국내 관객을 만난다. 오는 17일 개막하는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된 뒤 24일 극장 개봉한다.
황금사자상은 미국 감독 짐 자무시의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에게 돌아갔다. 영화는 성인이 된 자녀와 부모 간의 미묘한 관계를 그린 3부작 형식의 작품으로 케이트 블란쳇, 아담 드라이버 등이 출연했다. 무대에 오른 자무시 감독은 “예술은 정치적이기 위해 정치를 직접 다룰 필요가 없다. 사람 사이의 공감과 연결을 만드는 것이 문제 해결의 첫걸음”이라고 소감을 말했다.
2등상인 심사위원대상(은사자상)은 튀니지 감독 카우더 벤 하니아의 ‘힌드 라잡의 목소리’가 수상했다. 지난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피란길에 올랐다가 온가족이 비극을 맞이한 6살 소녀 힌드 라잡의 실화를 그린 작품이다. 소녀가 구조대와 나눈 실제 통화 음성을 싣는 등 전쟁의 참상을 고스란히 담은 영화는 상영 당시 무려 23분간 기립박수를 받으며 화제를 모았다.
감독상(은사자상)은 미국 영화 ‘스매싱 머신’의 베니 사프디 감독이 거머쥐었다. 실제 UFC 초창기에 이름을 날린 격투기 선수 마크 커가 다시 링에 오르기 위해 마약성 진통제에 의지하다 중독돼 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로, 프로레슬러 출신 배우 드웨인 존슨이 주연을 맡았다.
3등상에 해당하는 심사위원 특별상은 이탈리아 나폴리 베수비오 화산 인근에서 살아가는 주민들의 일상을 담은 지안프랑코 로시 감독의 다큐멘터리 ‘구름 아래에서’가, 각본상은 성공한 사진작가의 글쓰기에 대한 집념을 그린 ‘아 피에 되브르’의 발레리 도젤리와 질 마르샹이 받았다.
남우주연상은 개막작이었던 이탈리아 영화 ‘라 그라치아’의 토니 세르빌로, 여우주연상은 중국 영화 ‘우리 머리 위의 햇살’의 신즈리가 각각 차지했다. 평생공로상은 ‘아귀레, 신의 분노’를 연출한 독일 감독 베르너 헤어조크와 ‘현기증’에 출연한 미국 배우 킴 노바크에 돌아갔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