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발발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와의 전쟁이 7일로 700일을 넘겼다. 가자지구는 더 지독한 포연에 휩싸여 있고, 다수가 기독교인인 이스라엘 교민들도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지난 6월 이스라엘과 이란의 무력 충돌 당시 교민들이 목숨을 걸고 이집트 국경으로 피란했던 ‘역출애굽의 길’은 지금도 긴장감이 감도는 통로로 남아 있다. 전쟁과 테러가 빈번한 이곳에서 국경을 넘어 서로의 집을 피란처 삼았던 경험은 한국인 교민 사회를 하나의 연합체로 묶어 세웠다.
레반트한인총연합회 공식 출범
이스라엘 레바논 시리아 요르단 이집트의 한인회가 유사시 정보를 교환하고 서로의 피란을 돕는 레반트지역한인총연합회(회장 이강근 목사)를 출범시켰다. 레반트는 ‘해가 뜨는 곳’을 의미하는 프랑스어로 지중해 동부의 서아시아 지역을 가리킨다. 최근 이집트 다합에서 열린 출범식에는 박재원 이집트한인회장, 이경수 이집트한인회 부회장, 이강근 이스라엘한인회장, 황성훈 이스라엘한인회 부회장, 이충환 레바논한인회장, 장영수 레바논한인회 부회장이 참석했다. 장한주 요르단한인회장은 정세 악화로 불참했다.
레반트지역한인총연합회는 기존 교류와 친목 중심의 해외 한인 연합체들과 성격을 달리한다. 전쟁 상황에서 실제로 인접국 교민을 받아들여 피란과 구호를 실행한 경험을 바탕으로 출범했다. 교민 스스로 자구책을 세워 서로를 보호하고 정부와 대사관의 지원 이전에 안전망을 마련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는다. 여러 나라 교민 사회가 함께해 민간 위기 대응 체계를 만든 첫 사례다.
연합회는 배편과 전세버스 이동 등 현실적 루트를 사전에 설계해 ‘지도·연락망·차량’을 묶은 안전 매뉴얼을 마련하기로 했다. 이는 돌발 사태 발생 시 교민들이 혼란 없이 정해진 루트와 수단을 따라 신속히 대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초대 총연합회장은 이강근 이스라엘한인회장이 맡는다. 이 회장은 “이스라엘에는 800여명의 교민이 살고 있지만 대사관 직원은 소수에 불과하다”며 “위험을 무릅쓰고 상주하는 교민들이야말로 조국을 위한 최전선에 있다. 대사관은 2~3년 근무하다 떠나지만 교민은 평생을 산다. 레반트한인총연합회는 처음으로 전쟁 상황에서 이웃 국가의 한인회가 공조 체제를 이룬 사례”라고 설명했다.
이충환 레바논한인회장은 시리아 교민 출신으로 15시간을 이동해 이번 이집트 모임에 참석했다. 그는 “레바논은 인접국으로 나갈 길이 없다. 시리아는 여행금지국가라 통과 자체가 불가능하다. 레바논은 이스라엘과 적대국이라 고립돼 있다”며 “각 나라가 아이디어를 모아 함께 안전 문제를 고민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하다”고 말했다.
연합회는 사단법인이나 비정부기구(NGO)로 발전시켜 전·현직 회장이 함께하는 구조로 나아갈 예정이다. 종교적 색채는 덜 강조하고 교민사회의 특성을 반영해 운영하기로 했다. 평화 시에는 문화·예술 교류, 위기 시에는 공동 철수와 안전 대책 마련에 힘쓰기로 했다. 교민의 절반 이상이 선교사, 90% 가까이가 기독교인인 만큼 ‘성경의 땅’에서 함께 기도하며 지역을 섬기자는 다짐도 나왔다.
피란길이 남긴 연합의 기억
기자가 이번에 건넌 이스라엘 예루살렘과 이집트 다합 국경길은 연합회 결성의 배경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예루살렘에서 이집트에 닿기까지 여권 검사는 여섯 차례, 차량·소지품 검문까지 합치면 열 차례가 넘었다. 검문소마다 무장 군인들이 서 있었다.
창밖에는 끝없이 이어지는 모래와 돌, 즉 성경에서 말하는 광야가 펼쳐졌다. 언제 또 검문을 당할지 몰라 시선은 끊임없이 창밖 군인들의 표정으로 향했다. 8시간 여정 동안 사막은 변하지 않았다. 지난 6월 교민들은 이스라엘과 이란의 미사일 공중전을 피해 목숨을 걸고 이 피란길에 올랐다. 당시 교민들은 예루살렘을 빠져나와 요르단과 이집트로 흩어졌다. 서로의 집을 내어주고 도시락을 나누며 버텼다. 그 모습은 성경의 한 구절을 떠올리게 한다.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전 4:12)
예루살렘·다합=글·사진 김동규 기자 kky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