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쓰린 거야 늘 있었고 밥맛 없는 건 나이 탓인 줄 알았어요. 이게 꽤 진행된 암 증상이라네요.” “혈당이 좀 올랐으니 조심하라는 말은 들었지만 췌장암 얘기는 아무도 안 해줬죠.” 위암과 췌장암, 이 두 질환은 특히 조용히 진행된다. 통증이나 특별한 변화가 없다. 진단을 받았을 땐 이미 치료가 쉽지 않은 단계인 경우가 적잖다.
두 암 모두 환자 생존율이 낮은 이유는 조기 진단이 어렵기 때문이다. 요즘은 증상 발생 전 예측하고 대응하는 방향으로 의학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이를 예측의학이라 부른다. 예측의학은 몸이 보내는 사소한 신호를 모아서 위험을 미리 감지하고 치료를 개입할 수 있도록 돕는다.
위암은 국내서 발생률이 높은 암 중 하나다. 위암의 위험 요소는 일상 속에 있다. 헬리코박터균에 감염된 적이 있거나 오랫동안 속 쓰림이나 소화불량을 겪은 적이 있다면 그 자체가 위 점막 손상의 신호일 수 있다. 맵고 짠 음식을 자주 먹는 식습관도 위를 계속 자극한다. 가족 중 위암 병력이 있거나 만성 위염과 장상피화생이 있다면 더 주의해야 한다.
췌장암은 위암보다 더 눈에 띄지 않는다. 증상이 없다가 진단될 즈음엔 이미 다른 장기로 퍼져 있는 경우가 흔하다. 갑자기 당뇨가 생겼거나 기존 당뇨가 이유 없이 악화했을 때, 체중이 급격히 줄거나 식욕이 떨어졌을 땐 반드시 췌장 건강을 점검해야 한다. 특히 가족 중 췌장암 병력이 있거나 만성 췌장염이 있는 사람은 고위험군이다.
이 두 암을 조기 발견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 종양표지자다. 흔히 ‘암 마커’라고 불리는 이 수치는 암이 내 몸에 남기는 작은 메모 같은 것이다. 위암에서는 CEA와 CA 72-4라는 표지자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암세포가 자라면서 혈액 속에 흘러나오는 물질인데 수치가 높을수록 위암 가능성을 의심할 수 있다. 다만 이 표지자 수치는 위암 아닌 다른 상황에서도 올라갈 수 있어서 단독으로는 진단을 내리지 않는다. 하지만 과거 수치 변화나 다른 검사 결과와 함께 보면 아주 중요한 단서가 된다.
췌장암에서는 CA 19-9가 가장 널리 알려진 종양표지자다. 췌장암 환자 중 많은 경우에서 이 수치가 상승하지만 조기에 반드시 올라가는 것은 아니라서 수치만으로 판단하긴 어렵다. 하지만 혈당 변화와 체중 감소, 복부 불편감 같은 다른 신호와 함께 보면 조기 검진 단서가 될 수 있다.
종양표지자는 결국 단서에 불과하다. 중요한 건 이 단서를 정확하게 해석하고 연결하는 능력이다. 여기서 예측의학이 진가를 발휘한다. 과거 검진 기록과 유전적 정보, 혈액 검사 수치, 생활습관 등을 종합해 인공지능(AI)이나 알고리즘 기반 분석 도구로 암 발생 위험을 수치화해 보여주는 것이다. 일례로 50대 남성에게 헬리코박터균 감염 이력과 만성 위염, CEA 상승, 가족력까지 있다면 이 데이터들이 모여 ‘위암 가능성이 크다’는 신호를 줄 수 있다.
췌장암도 마찬가지다. 당뇨 진단과 체중 급감, CA 19-9 증가와 흡연력, 유전자 정보 등으로 췌장암 가능성을 수치화해 영상검사나 정밀 혈액검사로 연계시킬 수 있다.
예방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위암을 막기 위해선 짠 음식과 훈제육, 탄 음식 섭취를 줄이고 헬리코박터균 유무를 확인하고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다. 위내시경 검사를 2년에 한 번 정도는 받되 가족력이 있는 경우는 더 자주 받아야 한다. 췌장암 예방을 위해서는 금연과 음주 조절, 정상 체중 유지가 기본이다. 40대 이후 갑자기 생긴 당뇨나 만성 복통은 반드시 정밀 검사를 통해 확인해야 한다. 특히 유전성 위험이 있는 경우는 전문가 상담을 통해 맞춤형 검진 계획을 세우는 게 안전하다.
암은 조용히 다가오지만, 우리 몸은 미리 신호를 보낸다. 중요한 건 그 신호를 놓치지 않고 해석해 대응하는 것이다. 위암과 췌장암은 ‘놓치기 쉬운 암’이기에 예측의학이란 새로운 렌즈로 바라봐야 한다.
“조금만 더 일찍 알았더라면….” 이 말을 하지 않기 위해 지금부터라도 몸의 언어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암은 말이 없지만, 몸은 늘 무언가를 말하고 있다.
선한목자병원장